- 제목
- 생명의 역사44: 사피엔스, 인간 특이 유전자
- 작성일
- 2020.08.18
- 작성자
-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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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2005년 발표된 침팬지 유전체 분석에 의하면,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경우 사람의 유전자는 침프 유전자와 1/3이 동일했으며 나머지는 평균 아미노산 2개 정도만 달랐습니다. 우리가 침프보다 특별한 이유는 뇌활성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활성과 관련된 유전자는 기존 알려진 FOXP2나 소두증에 연루된 ASPM 유전자 이외에 특별히 사람에게만 있을 법한 유전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두 유전체의 단일염기 차이는 1% 수준 정도였고, 크고 작은 삽입이나 결손 그리고 유전체 중복을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4% 정도가 달랐습니다. 곧이어 발표된 논문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양성선택된 유전자들을 분석하였는데, 그중에는 여러 전사조절인자, 생식세포 생성, 면역 및 감각에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뚜렷이 뇌활성에 관련된 유전자를 알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침팬지 유전체를 밝힘으로써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유전자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과학자들에게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실 단일염기 1% 차이는 사람 유전체 30억 염기쌍 중 3000만 염기쌍에 해당하며, 그러한 차이가 단백질 비암호화 지역에 몰려 있게 되면 기존 유전자의 발현 시간이나 위치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두 종간의 뇌활성의 차이는 거기서 비롯될 수 있기에, 단백질 비암호화 지역에서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양성선택된, 단일염기 변이가 몰려있는 지역을 찾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과학자들은 막대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여 척추동물에서부터 침프까지는 별로 달라지지 않다가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달라지는 영역, 소위 인간화 가속변이 영역(human accelerated regions, 이하 HAR)을 찾아냅니다. 이들 중에는 대뇌 신피질 영역의 발달과 배치를 조절하는 RNA 분자(noncoding RNA)인 HAR1이 있으며, 뇌활성 유전자의 전사를 촉진하는 인핸서(enhancer)로 작동하는 HAR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듀크 대학의 실버(Silver) 박사팀은 뇌의 발달에 관여하는 윈트(Wnt) 신호계의 수용체 Fzd8의 발현을 증가시키는, 침프와 확연히 다른, 인간 특이적인 인핸서 HARE5를 발표합니다(1). 이 HAR는 배아발생 초기에 신경 줄기세포의 분열 횟수를 증가시켜 대뇌 신피질을 확장시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HAR의 2/3는 배아의 팔다리, 눈, 및 중추신경계 발달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 사피엔스의 HAR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에서도 발견됩니다. 따라서 이들은 사피엔스의 행동적 현대화보다는 형태적 현대화 과정에서 양성선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이들 몇몇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특정 HAR 클러스터의 반복수 변이(copy number variation, CNV)가 자폐 어린이 5%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반복으로 인하여 배아발달 초기에 CUX1 유전자의 발현이 증가되어 시냅스 형성이 더 잘되지만, 이후 시냅스 쳐내기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뇌신경망이 근거리에 밀집하게 됩니다. 결과로 원거리 신경망 형성이 덜되기 때문에 자폐 증상이 나타난다고 가정합니다(2). 사피엔스에 이르는 인간화 과정에서 HAR 클러스터는 뇌의 발달에 일정 역할을 했지만, 이후에 일어나는 HAR의 변이는 우리의 사회적 소통과 인지 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 유전적 변이를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배아발생시 특히 초기에 인간의 뇌에서만 발현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막스플랑크 연구소 플로리오(Florio) 박사는 생쥐에서는 발현되지 않지만 사람에서만 발현되는 56개의 유전자 찾아냈고, 그 중 뇌발달에 관여하는 변이 유전자 ARHGAP11B의 기능을 알아냅니다(3). 이 유전자는 침프와 갈라진 후, 네안데르탈인과 갈라지기 전에 나타난 중복 돌연변이 유전자입니다. 그 변형 단백질이 배아발생 초기 신경 줄기세포 신피질 확장, 그리고 뇌의 고랑과 주름을 만드는데 일정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비슷한 방법으로 또 다른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뇌를 크게 만든 중복 돌연변이 유전자 NOTCH2NL이 두 연구팀에 의해 독립적으로 발견됩니다(4). 이 유전자의 원형은 줄기세포 분화에 관여하는 알려진 NOTCH2 유전자인데, 그의 진화 이력은 흥미롭습니다. 900만년전 고릴라 계열에서 첫 번째 유전자 중복이 불구 상태로 일어난 이후, 침프 및 호미닌 계열로 계승됩니다. 3-4백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와서 원형 NOTCH2 유전자 일부가 불구를 회복시켜 NOTCH2NL을 만듭니다(gene conversion). 이때 뇌의 확장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가 공동조상에서 분리되기 전에 NOTCH2NL 유전자가 두 번이나 증폭되는 사건이 일어나,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NOTCH2NL-A, B, C 셋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면서 뇌용량이 또 다시 크게 늘어납니다. NOTCH2와는 다르게 NOTCH2NL 돌연변이 단백질은 신경 줄기세포 분열에 아주 작은 효과를 줍니다. 일반적으로 줄기세포가 분화하는 시점에는 비대칭적으로 세포분열이 일어나, 하나는 줄기세포상태(stemness)를 유지하지만 다른 하나는 줄기세포능력을 잃어버리고 다른 성질을 가진 세포로 분화합니다. NOTCH2NL은 이러한 줄기세포 비대칭 분열을 막고 두 개의 딸세포가 그대로 줄기세포능력을 유지하게 합니다. 따라서 줄기세포 수의 증가가 있게 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전체 신경세포의 수가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돌연변이 단백질의 작은 효과가 뇌를 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죠. NOTCH2NL 유전자는 대두증(macrocephaly)과 소두증(microcephaly)을 일으키는 염색체 1번 지역(1q21.1)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특히 NOTCH2NL-A와 NOTCH2NL-B 사이에는 주의력결핍 행동장애(ADHD), 조현증(schizophrenia), 및 자폐증(ASD)에 연루된 영역으로 8개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두 개의 같은 NOTCH2NL 유전자 사이에 낀 8개 유전자는 부분적인 중복이나 결손이 빈번해져 여러 신경 혹은 정신질환이 발생하는 것으로 봅니다.
여기서 진화의 역설 혹은 교훈이 드러납니다. NOTCH 신호계는 모든 동물의 배아발달 과정에 사용된 가장 오래된 신호계입니다. 이 신호계가 5억년 동안이나 변하지 않고 있다가 천만년 전부터 중복과 수선 또 중복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기능을 못하는 NOTCH2의 중복은 동물의 적합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전형적인 중립변이입니다. 그러나 진화는 이러한 원재료를 내버려두지 않고 수선하여 부활시킵니다. 수선은 어느 때나 일어나는 우연의 사건이며 지금 보면 우리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이어서 또 다른 중복사건이 겹치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죠. 사피엔스는 NOTCH2NL의 증복 때문에 뇌가 한참 커지는 이득을 보았지만, 중복영역 사이에 유전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여러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진화는 우연이고 맞교환입니다. 두 번의 우연이 연속적으로 선택된 이유는 뇌를 키워야 하는 환경압력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HAR도 마찬가지입니다. 척추동물에서 근근이 보존되어 있던 영역이 갑자기 호미닌 계열에서 달라지고 또 양성선택됩니다. 선택의 대가 역시 정신질환으로 다가옵니다.
인간 두뇌혁명은 사회적 소통 문화에 의해 다듬어진 표현형입니다. 그러한 표현형을 나타나게 하는 유전자형은 단위 신경세포에서 신경돌기(neurite) 수나 수상돌기(dendrite)의 길이를 조절하는 어떤 것(예, HAR1, FOXP2 등), 그리고 단위 신경세포의 수를 늘리는 어떤 것(예, ARHGAP11B, HARE5, NOTCH2NL 등)입니다. FOXP2로 돌아가면, 우리는 말을 하면서 의미에 맞게 얼굴 표정과 손짓을 합니다. 단어를 조합하여 의미를 만들어내는 베르니케(Werniche) 영역과 음성으로 나오게 하는 브로카(Broca) 영역, 얼굴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영역, 손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영역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것이죠. 호모 이렉투스 정도면 각 영역으로 들어가는 신경망 도로는 깔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며, 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도로 폭이 넓어지고, 뇌의 행동적 현대화가 일어나면서 각 영역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사람 특이적인 FOXP2는 신경세포 돌기의 수와 길이를 증가시켜 원거리 신경망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신경망 강화나 재구성에 일일이 유전자의 지시를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유전자에 의해 지시되는 부분은 FOXP2와 같이 신경가지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과 또 NOTCH2N 같은 신경세포 수를 늘리는 일,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신경망 형성에 있어서 발생 초기에 신경세포가 자리할 위치나 뻗어나갈 도로는 유전적 설계에 맡기지만, 도착 장소에서 신경망을 채우는 것은 유전적이 아닌 공간이 허용하는 물리적인 변수입니다. 신경망의 복잡성은 신경 세포의 수에 의존합니다. 세포의 수가 많다 보면 한정된 공간을 넘어 다른 영역의 가지와 망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것이죠. 다시 강조하면 참가자 수를 증가시키는 유전적 변이만 있으면 그 이후는 상호작용 네트워크 자체의 창발적인 현상으로 문학, 음악, 미술이 있게 되는 것이죠(emergent complexity). 추상적인 생각이나 표현은 참가자의 수의 증가에 따른 상호작용 네트워크 복잡성의 산물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배아발달 과정에서 외부환경(자궁)의 영향으로 어떤 뉴런의 성장 속도나 경로가 약간 바뀐다고 가정해 보면, 그로 인해 생긴 조금 다른 신경망을 가진 자식은 형제자매나 동료에 비해 이점을 누리고, 또 그러한 환경이 수세대 걸쳐 반복되면 그 신경망은 지속적으로 선택될 수 있습니다. 나중 유전적 변이가 신경망 형성을 뒷받침해준다면 비유전적인 발달변화가 유전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를 소위 유전적 동화(genetic assimilatio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전적인 동화가 없더라도 뇌신경망 구성에 발달가소성(developmental plasticity)이 강하게 발휘되어 사회적 압력에 순응하며 지낼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genetic accommodation). 이러한 발달가소성을 보유한 개체 혹은 종은 유전적인 변화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환경 압력을 수용하여 부모세대의 신경망을 자식세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나중 유전적 동화로 안정화되면 발달가소성은 약해지거나 없어집니다. 발달가소성은 한 개체의 진화력(evolvability)을 주는 것이며, 이는 무작위로 일어난 유전적 변이가 선택되어야 하는 긴 진화 여정 대신에 진화를 빠르게 이끕니다. 새로운 행동이 유전적 변화의 선택압으로 작동하고, 동화된 유전적 변화들이 새로운 행동을 수월하게 형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죠(생명의 역사 15, 16, 17 참조). 한 걸음 더 나가면, 환경 정보를 수용하여 신경망 구성의 변화를 주는 후성유전 효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경망 구성에 관계하는 유전자 변이없이 후성유전 표지로 유전자의 발현이 조절되어 신경망을 확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후성유전 표지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증거, 간헐적으로 나옵니다(카페 글 5, 6, 16 참조).
인간화의 유전적 증거를 찾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레히(Reich) 박사는 두뇌혁명은 유전적인 요인 보다는 문화적 요인이 더 작용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즉, 두뇌혁명에 관련된 유전적 변이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죠. 뇌가 커지면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고, 행동은 형태의 변화를 유발했고, 그 형태는 다시 복잡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더욱 큰 두뇌를 선호했습니다. 1940년대 이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대종합론(modern synthesis)’ 즉, 무작위적인 변이가 일어나고 그 변이가 선택된다는 전통적인 진화이론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extended modern synthesis). 뇌의 진화를 보면 생물학적 무작위가 작동하다가 나중에는 문화적인 요인 더 크게 작동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티핑포인트는 뉴런의 숫자입니다. 사람의 진화 과정에서 뉴런의 수는 임계치를 넘은 것 같습니다. 뉴런 증가의 기원을 따지면, 1억년 즈음 포유동물이 내온성 대사전략을 채택하여 많이 먹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어서 두발걷기를 하면서 먹거리 수집이 편해졌고, 도구를 만들면서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먹었습니다. 플라이스토세의 환경압력에 여러 번 유전적 병목을 겪으면서 오롯이 먹는 문제를 잘 해결한 사피엔스는 뇌를 크게 하는 우연적인 변이, 그것도 여러 변이를 집요하게 수용하여 큰 뇌를 유지했습니다. 이제 뇌는 늘 만큼 늘어 있다면 질문해 봅니다. 과연 우연적인 생물학적 변이가 앞으로도 계속 작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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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yd JL et al. Human-chimpanzee differences in a FZD8 enhancer alter cell-cycle dynamics in the developing neocortex. Curr Biol. 2015 Mar 16;25(6):772-779. doi: 10.1016/j.cub.2015.01.041.
2. Ryan N. Doan et al. Mutations in Human Accelerated Regions Disrupt Cognition and Social Behavior. Cell 167, 341–354, October 6, 2016 http://dx.doi.org/10.1016/j.cell.2016.08.071
3. Florio M et al. Human-specific gene ARHGAP11B promotes basal progenitor amplification and neocortex expansion. Science. 2015 Mar 27;347(6229):1465-70. doi: 10.1126/science.aaa1975.
4. Fiddes IT et al. Human-Specific NOTCH2NL Genes Affect Notch Signaling and Cortical Neurogenesis. Cell. 2018 May 31;173(6):1356-1369.e22. doi: 10.1016/j.cell.2018.0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