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 진화적 불일치
- 작성일
- 2020.08.18
- 작성자
-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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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리간드와 수용체 쌍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이미 둘이 존재하고 둘 사이 상호작용이 적응적이면, 서로가 상호작용 특이성을 증가시키면서 공진화하여 쌍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간드가 유전자에 정보화되어 있는 단백질이 아닌 스테로이드는 적응적인 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용체와의 공진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2001년 쏘온톤(Thornton) 박사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그의 수용체 쌍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에스트로젠이 스테로이드 화합물 중 처음으로 불특정 핵수용체 하나를 자신의 수용체로 발탁해 씀으로써 호르몬 자격을 얻습니다. 이 수용체는 에스트로젠에 그리 높지 않은 특이성을 보이며 여러 다른 합성 중간물질과 결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코티코이드가 있었으며, 중복변이로 생긴 여분의 에스트로젠 수용체는 코티코이드에게 결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 여분의 수용체는 몇몇 아미노산 변이를 거쳐 코티코이드 수용체로 됩니다. 2006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후속연구에서 쏘온톤 박사팀은 현존하는 동물의 코티코이드 수용체 유전자들의 계통도를 분석하여 모든 척추동물의 조상 코티코이드 수용체 AncCR을 부활시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힙니다(1). 『AncCR은 당질코티코이드인 코티솔과 무기질코티코이드인 알도스테론 둘 다에 비슷한 친화력으로 결합할 수 있다. 즉, 조상 수용체는 당질코티코이드 수용체(GR)이면서 무기질코티코이드 수용체(MR)다. 그로부터 4.8억년 동안 진화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GR은 알도스테론 결합능력을 상실했고 현재의 MR은 조상형의 특징을 간직하여 코티솔과 알도스테론 둘 다에 결합한다.
쏘온톤 박사팀의 발견은 동물의 생존에 지극히 중요한 스트레스 반응과 그의 조절오류로 나타나는 정서 및 행동 장애의 원인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우선, 코티솔과 알도스테론이 등장한 과정을 살펴보면, 무악 척추동물은 AncCR 수용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코티솔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나중 연골어류로 진화한 후에 코티솔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알도스테론 없이 지내다가 수백만 년이 지난 후 3.8억년전 육상으로 진출하는 수생 사지류(tetrapods)에서 나타납니다. 알도스테론은 육상생활을 하는 동물에서 체내 염도와 수분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땅으로 올라오기 전에는 코티솔에게 스트레스 반응 유도와 삼투압 조절을 함께 맡겼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새로이 나타난 알도스테론은 기존 코티솔이 차지했던 수용체를 자기 짝으로 삼아 우선권을 주장하며 코티솔과 경쟁합니다. 코티솔은 기존 것 이외에 유전자 중복산물을 택하여 또 다른 자기만의 특화된 수용체 GR을 가집니다. 현존하는 MR에는 옛적 특징이 남아있어 알도스테론과 코티솔에 대해 거의 비슷한 친화력을 보입니다. 결국 코티솔은 2개의 수용체 MR과 GR을 가지고 있는데, MR이 GR보다10배나 더 높은 결합력을 보입니다. 그래서 MR을 제1형 코티솔 수용체, GR을 제2형 코티솔 수용체라 합니다. 그러면 MR이 알도스테론의 수용체로 된 이래 그의 특이성과 친화력을 증가시키지 않고 지금까지 코티솔이 달라붙게끔 내버려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코티솔이 제2의 수용체 GR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생존 위협에 직면하여 동물이 나타내는 반응과 그 반응을 조율하는 메커니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동물은 위험을 감지하면 시상하부에 자리한 신경세포가 ‘방출호르몬(CRH, corticotrophin releasing hormone)’을 뇌하수체 전엽에 쏘면서 거기에 있는 내분비 세포에 ‘부신피질로 향하는 호르몬(ACTH, adrenocorticotrophin)’을 분비하라고 지시합니다. ACTH는 혈액을 타고 부신피질에 도착하여 코티솔(설치류의 경우는 코티코스테론) 합성 명령을 내립니다. 이 명령체계를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이라 하며, 명령을 접수하여 코티솔이 분비되기까지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이보다 초단위로 훨씬 빠른 자율신경계를 통해 부신수질(adrenal medullar)에 에피네프린(epinephrine)과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를 분비하라는 지령이 갑니다. 이들은 카테콜아민(catechol amine) 계열의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로서 간세포에 작용하여 포도당 동원을 독려합니다. 심장박동을 증가시키고 호흡을 가파르게 유도하여 근육에 포도당과 산소를 빠르게 공급합니다. 뇌로 혈류를 증가시켜 집중력을 높이고 머리 회전을 빠르게 합니다. 반면, 소화기관이나 콩팥, 피부로 공급되는 혈류를 차단합니다. 이는 긴급하게 위험에 대처하여 싸울 것인가 아니면 도망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노르)에피네프린에 의해 촉발되는 ‘싸움-혹은-도망(fight-or-flight)’ 반응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며, 한번의 파도로 끝납니다. 이어지는 큰 파도는 HPA 축의 활성화로 분비되는 코티솔에 의해 일어납니다. 여기에는 당면한 위협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진짜 위험한가? 얼마나 위험한가? 혹시 잘못 본 것 아닌가? 등등 입니다.
두 번째 코티솔 파도가 밀려오면, 이때는 간과 근육에 포도당 동원령을 유지하고, 지방세포에 작용하여 지방분해를 통한 가용 에너지원 확보에 주력합니다. 이는 글리코겐 풀이 고갈되어 포도당 공급이 제한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코티솔은 근육에도 작용하여 근육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한 후 간으로 수송하여 포도당 합성에 씁니다(gluconeogenesis). 위험이 장기화되는 경우, 코티솔은 근육을 줄이면서 필요한 포도당을 충당하는 것이죠. 이러한 소모성 대사는 코티솔이 지속적으로 높은 농도로 있을 때, 즉 보통의 스트레스를 넘어 지속적인 생존 압박을 받을 때 나타납니다. 이때는 면역방어나 번식에 에너지를 투입할 여력이 없습니다. 높은 농도의 코티솔은 면역기능을 억제하고 출산력를 줄입니다. 이쯤이면 위협에 대처하는, 생존에 필수적인 스트레스 반응은 동물에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동물은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에 어떻게 대처할까요? (노르)에피네프린은 뇌로 들어갈 수 없지만 코티솔은 뇌로 들어가 HPA 축의 활성화를 막음으로써(음성 되먹임 조절) 스트레스 반응을 종료하고 평정을 찾게 합니다. 여기서 혈중 코티솔 농도에 따른 정교한 조절장치 작동이 돋보입니다. 동물은 MR과 GR 비율을 조정하며 혈중 코티솔 농도를 밤낮 주기를 가지고 일정 범위로 유지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이라도 허용범위 내에 있을 때 뇌로 들어간 코티솔은 MR을 자극합니다. 이럴 경우 HPA 축의 활성화가 유지됩니다. 사실 MR이 자극되면 뇌는 위협이 대수롭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죠. 허용범위를 넘었을 때, 코티솔은 낮은 친화력의 GR을 자극하게 됩니다. 이때는 HPA 축 활성화를 막아 코티솔 생산을 줄입니다(autoregulation). GR은 스트레스 반응 종결에 관여하고 MR은 스트레스 반응의 시작과 평가에 관여합니다. 혈중 코티솔 농도의 허용범위는 GR 친화력으로 결정되며 개인별 차이가 있습니다. 친화력이 높은 GR을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 인지문턱이 낮아 조그마한 스트레스에도 힘들어 합니다(stress sensitive). 한편 MR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탄력성을 보입니다(stress resilient). 진화는 코티솔에게 높은 친화력의 MR은 물론 낮은 친화력의 GR을 가지게 함으로써 생존에 부담을 주는 소모성 대사 활성을 제한하고, 더 나아가 번식력과 면역기능 저하를 막아 동물의 적합도를 증가시켰습니다.
중증 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는 코티솔 생산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어렸을 때 신체적 혹은 심리적 학대를 받은 사람은 후성유전 효과로 뇌 특히 해마(hippocampus)에 GR 발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해마는 코티솔 양을 가늠하여 HPA 축의 활성화를 조절하는 사령탑입니다. 그곳에 GR 발현이 거의 없거나 줄어들어 있다면, 아무리 혈중 코티솔이 증가되어 있더라도 인지하지 못하고 HPA 축이 계속 돌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스트레스 상태에 있고 쓸데없는 에너지 대사가 활발히 일어납니다. 면역력 저하는 물론이고요. 한편,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뇌가 생존모드 즉, 급성 스트레스 반응 결과에 함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PTSD 환자는 코티솔에 대한 GR 반응성 즉, 민감도가 증가되어 있어 코티솔이 조금이라도 더 분비되면 많이 있다고 간주합니다. 위험에 대한 평가가 과장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정리하면, 동물에게 주어진 위협적인 상황이 자율신경계를 자극하여 (노르)에피네프린을 만듭니다. 동시에 HPA 축을 통하여 코티솔도 만듭니다. 이 두 시스템은 모든 척추동물 공통입니다. 이들은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어떤 큰 변이를 용납하지 않고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영장류에 이르러서는 스트레스 유발원이 다양해집니다. 물리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위협 더 나아가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위협이 있게 되고, 이들에 대해서도 진화적으로 아주 오래된 시스템이 작동됩니다. 여러 정서 장애는 이러한 진화적 불일치(evolutionary mismatch) 때문에 생기는 것이죠. 뇌로 들어가는 코티솔은 정상 수준에서는 위협의 진위 여부를 MR을 통해 판단합니다. MR이 자극되면 스트레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트레스를 견딥니다. 또한 뇌로 들어간 코티솔은 노르에피네프린 생산을 유도하여 주의력, 경계심, 기억력을 향상시키며 공포심을 자극합니다. 이는 위험에 처한 동물의 생존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만들어지면 심한 공포감, 그리고 무기력과 낙담에 빠집니다. HPA 축의 조절본부 해마는 특별히 코티솔에 민감한 기관입니다. MR이 자극되면 주의력과 기억력이 높아지지만, 너무 많은 코티솔은 GR을 자극하여 해마의 신경세포를 죽입니다. 노화에 따른 기억력 쇠퇴는 높은 코티솔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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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T. Bridgham, S.M. Carroll, J.W. Thornton*Evolution of Hormone-Receptor Complexity by Molecular Exploitation. Science 07 Apr 2006: Vol. 312, Issue 5770, pp. 97-101. DOI:10.1126/science.1123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