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생명의 역사39: 도구제작과 호모 속의 등장
- 작성일
- 2020.08.18
- 작성자
-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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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8
지난 글에서 두발걷기는 밀림이 나누어지는 환경압력에서 초기 호미닌이 성선택에 기반한 번식성공과 나무 위에서 먹거리 채취에 유리한 신체구조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400-200만년 전 사이에 발견된 화석은 호미닌이 점차 두발걷기에 적응하여 오래 달릴 수 있는 신체구조로 바뀌어 갔음을 증거합니다. 생명의 역사 17번 글 ‘육상진출 행동이 형태의 진화를 견인하는가?’에서 허파를 가진 폐어 폴립테루스(Polypterus)를 이용하여 반복적인 육상생활 적응훈련이 가슴지느러미와 아가미를 지지하는 흉대(pectoral girdle)의 모양을 변하게 했다는 실험결과를 소개했습니다. 동물들에게는 행동(혹은 발달)가소성[behavioral (or developmental) plasticity]이 있어 환경변화에 따른 적응적 행동이 유전적 동화(genetic assimilation)를 거쳐 신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발걷기 행동도 많은 체형의 변화를 야기합니다. 손과 발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물건을 조심스럽게 잡아(precision grip) 감지하고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이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유도 형질로 엄지 손가락을 다른 네 손가락 끝에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며(opposable thumb), 또 뇌에서 손가락 각각의 근육으로 전달되는 신경망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호미닌을 오래된 순으로 정리해 보면, 사헬란트로프스(700-600만년 전), 오로린(600-500만년 전), 아르디피테쿠스(500-42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420-200만년 전) 등입니다. 여기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는 아나멘시스 종(420-390만년 전), 아파렌시스(380-300만년 전), 아프리카누스(300-200만년 전) 순으로 나타납니다. 화석 나이가 그렇다는 것이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들은 200만년 동안이나 앞뒤로 겹치며 공존했습니다. 이들은 이빨, 어깨, 척추, 골반, 팔과 다리, 그리고 각 관절 등에서 나타나는 인간화 형질에 부분적인 차이를 가집니다. 모자이크성 진화라 하여 신품으로 교체된 부분이 종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이야기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 사이에 수평적인 유전자 교환이 없이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두발걷기가 시작된 이래 거의 300만년 동안 뇌는 별로 커지지 않았습니다.
1964년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 올두바이(Olduvai) 계곡에서 뇌가 550-680 cc 정도로 커진 두개골 화석이 발견됩니다. 뇌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50% 커진 셈이며 이빨은 작아졌습니다. 눈두덩뼈는 덜 불거지고 입이 덜 튀어나와 있어 유인원보다는 사람의 두개골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유골은 돌도구와 함께 발견된 것이죠(올도완 도구, Oldowan tools). 그 도구는 조악했지만 일정 방향으로 잘려나가 날카로운 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이러한 석기 제작자 유골을 ‘손을 잘 다루는 사람(handy man)’이란 의미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 명명합니다. 180-190만년 전에 살았던 종으로 키는 130-150 cm 정도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조금 컸습니다. 이후로 20여종 이상의 호미닌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호모 속은 28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올도완 도구는 260만년 전 것까지 발견됩니다.
2015년 도구제작 시기가 330만년 전까지 올라간다는 논문이 발표됩니다(1). 그렇다면 호모 종이 그 도구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만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과연 뇌가 발달되어야 도구를 제작할 수 있는가?’ 또 ‘도구에는 제작자의 의도가 담겨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영장류는 물건을 쥐고 내려치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침팬지는 너트를 깨려고 돌맹이를 이용합니다. 기어 다니는 아기도 장난감을 쥐고 두드리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지금까지 도구사용은 영장류의 본질적인 행위이지만 만드는 행위는 뇌발달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영국 옥스퍼드대와 브라질 상파울루대 공동연구팀은 카푸친 원숭이들도 돌과 돌을 부딪쳐 깨는 방식으로 올도완 도구와 흡사한 도구를 만든다는 것을 네이쳐에 발표합니다. 카푸친 원숭이 무리 중 일부가 돌을 골라서 깨는 반복행동을 보였으며, 깨진 돌 중 절반은 원숭이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봤을 때는 전문가 눈으로도 새로 발견된 올도완 도구라고 확신할 정도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네이처는 "이번 연구는 인류의 고고학적 기록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졌다"고 평가합니다. 지금까지 연구 성과 중 일부는 다시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호미닌이 나무에 내려와 돌을 잡고 바위에 내려치다 깨진 날카로운 박편을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화석 증거는 사람화 과정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손의 엄지가 길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잡는 힘을 조절할 수 있었고, 망치로 쓸만한 단단한 돌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흑요석이나 석영암을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뇌발달없이 힘을 적당히 주며 전체 모양을 파악해서 잘라낼 부분이 어디인가를 견주며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과연 뇌용적이 늘어나지 않았다고 뇌발달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사람화 과정에 있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좀 더 똑똑해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루시의 아기’으로 명명되는, 아펜렌시스 종에 속하는 3살짜리 셀람(Selam) 유아 화석이 있습니다. 셀람은 루시보다 20만년 앞선 화석이지만 걸음마를 뗀 유아 화석이라 그리 불립니다. 타웅 어린이보다 100만년 정도 먼저 태어났으며 한참 어립니다. 셀람의 뇌용량은 다 컸을 때 대비 65-88% 정도인데, 같은 나이의 침프는 90%에 이르니, 초기 호미닌 아기는 침팬지 보다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 엄마의 보살핌으로 뇌발달이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직립했기 때문에 출산 시 좁아진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뇌는 작아야 합니다. 사람의 특성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한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두개골 안에 담긴 뇌의 본(brain endocast)을 떠 용량뿐만이 아니라 뇌의 굴곡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뇌본 분석의 전문가인 컬럼비아 대학의 홀로웨이(Holloway) 박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뇌는 침팬지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구조가 달랐다고 주장합니다. 아파렌시스나 아프리카누스의 뒤통수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occipital lobe)이 침팬지의 후두엽보다 뒤로 물러나 있고 작습니다. 같은 부피에서 시각정보처리 영역이 줄어있다면 다른 영역 즉, 두정엽(parietal lobe)과 전두엽(frontal lobe)이 늘어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호미닌은 시각정보를 받아 좀 더 섬세하게 좀 더 계획적으로 손을 다룰 수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반면 플로리다 대학의 팔크(Falk) 박사는 시각영역이 줄어 있는 것으로 호미닌의 뇌가 사람화 과정에 있었다고 해석하기 보다는 침프의 특징에 머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도구를 제작하려면 뇌용량이 증가하건 뇌구성이 변하건 좀 더 똑똑해져야 했습니다. 생명의 역사 35번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80만년 전 앞뒤 50만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종분화와 부침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건조한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초식을 고집한 파란트로프푸스는 한참 번성하다가 150만년 전 즈음 사라집니다. 그러나 척박해진 환경에서 도구를 제작하여 새로운 먹이 자원을 개발한 호미닌은 호모 종으로 진화합니다. 사실 도구로 긁은 흔적이 있는 동물뼈 화석이 비슷한 시기인 250만년 전에 나타납니다. 도구를 제작할 수 있는 호미닌들은 육식동물이 남긴 사체의 뼈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 먹거나 골수를 빼 먹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은 사냥을 할 만큼 신체적 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이에나와 같이 시체 청소부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구제작은 호미닌을 초식성에서 잡식성으로 바꾸었고, 그럼으로써 육식이 가능했던 종은 신체발달과 함께 뇌발달이 좋아졌고, 이들이 호모 종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봅니다.
고인류학자들은 경쟁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에서 호모 종으로 연결되는 화석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손모양과 함께 팔의 길이가 짧아집니다. 발모양이 바뀌며 다리길이가 늘어나고 무릎관절이 커집니다. 등뼈가 굽은 형에서 S형으로 바뀝니다. 갈비뼈가 축소됩니다. 뇌가 커지고 이빨이 작아지는 것 외에도 이러한 특징을 부분적으로 소유한 200만년 전 이전의 화석이 전이 종 후보입니다. 200만년 전 즈음 아프리카 남쪽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Australopithecus sediba) 화석 종을 소개합니다. 2010년 남아공화국 비츠 대학(Wits, 타웅 발견자 다트 박사가 근무했던 대학임) 리 버거(Berger) 박사팀은 아프리카누스 종과 하빌리스 종 사이의 전이화석을 발견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합니다(3). 세디바의 뇌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정도지만, 턱과 이빨은 호모 하빌리스보다 진전된 호모 이렉투스(Homo erectus)의 것입니다. 골반뼈는 신형으로 이렉투스처럼 잘 걷을 수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발꿈치는 구형인데 또 발목은 신형입니다. 손은 놀랍게도 신형으로 긴 엄지와 짧아진 네 손가락을 가집니다. 섬세한 손가락 움직임이 가능해 보이지만 손목뼈는 나무생활에 적합해 보입니다. 세디바는 모자이크 진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세디바가 호모 종의 시작이라는 버거 박사의 주장에 즉각적인 반론이 제기됩니다. 아르디를 발견한 화이트 박사는 하빌리스 종으로 간주되는 230만년 전 턱 화석이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보다 나중에 나온 세디바가 호모 속의 조상일 수 없다. 세디바는 아프리카 남부에 있었던 아프리카누스의 한 분지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합니다. 인류학자들은 자부심이 무척 강하며 다투길 잘합니다. 자신의 화석을 항상 인류 진화의 중요한 순간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니 서로의 의견이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중 더 많은 증거가 나오면 정리됩니다.
도구제작은 호미닌의 진화역사에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도구제작으로 인하여 생명의 진화는 환경압력에 수세적으로 또 방어적으로 대응하던 양상에서 공격적이고 모험적으로 대응하는 양상으로 바뀝니다. 사람만이 도구를 만들어 주변을 바꿉니다. 우리 조상이 맨 처음 개발한 테크놀로지는 식성을 바꾸게 하였고, 그로 인한 고칼로리 필수 영양소의 원활한 조달이 뇌의 발달에 기여했습니다. 그보다 더, 도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유용 먹거리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인간화가 촉진되었을 것입니다. 도구제작은 우리를 최고의 먹는 기계로 그리고 최고의 생각하는 기계로 진화하는데 초석을 깔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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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rmand, Sonia; et al. (2015). "3.3-million-year-old stone tools from Lomekwi 3, West Turkana, Kenya". Nature. 521 (7552): 310–315. doi:10.1038/nature14464. PMID 25993961.
(2) Alemseged, Zeresenay; et al. (2006). "A juvenile early hominin skeleton from Dikika, Ethiopia". Nature. 443 (7109): 296–301. doi:10.1038/nature05047. PMID 16988704.
(3) Kivell TL, Kibii JM, Churchill SE, Schmid P, Berger LR (2011). "Australopithecus sediba hand demonstrates mosaic evolution of locomotor and manipulative abilities". Science. 333 (6048): 1411–1417. doi:10.1126/science.1202625. PMID 21903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