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감정, 생각의 길잡이
- 작성일
- 2020.08.18
- 작성자
-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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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9
감정(emotion, 움직임을 일으키다)은 바깥 세상 정보에 대한 신체적 반응으로 얼굴표정의 변화, 내장기관의 생리적 변화, 각종 화학물질 분비 등을 수반합니다. 웃고 울고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나며 온 몸이 긴장되고 동공이 확장됩니다. 말 그대로 ‘움직임을 일으키다’ 입니다.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순전히 생물학적 과정입니다. 반면, 느낌(feeling)은 뇌가 감정반응을 인식하고 ‘아 내가 기쁘구나 혹은 슬프구나!’를 알게 되는 심리적 과정입니다. 우리는 ‘감정’과 ‘느낌’을 구별하지 않고 쓰지만 사실은 이렇게 다릅니다.
감정의 신호전달과정을 짚어 봅시다. 바깥 세상의 시각정보는 빛에너지로, 청각은 파동에너지로, 촉각은 압력으로, 후각과 미각은 화학분자로 해당 감각신경세포(감각뉴런 sensory neuron)의 수용체를 건드리면서 뇌로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정보를 받은 세포는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이를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던 뉴런이 받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을 받은 세포는 활성화되어 그 정보를 긴 신경다발(neuronal axon)을 통해 연접한 또 다른 뉴런에 전합니다. 신경전달물질을 주고 받는 부위를 시냅스(synapse)라고 하는데 20 nm정도의 아주 좁은 틈을 두고 있습니다. 바깥의 상황을 급하게 알려야 할 경우라면 시냅스 단계를 줄입니다. 이때는 오류를 감수해야 하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려면 시냅스 단계가 늘어나며 단계마다 정보의 질과 양을 조율합니다.
뇌에서 몸으로 나가는 감정신호는 중앙에 위치한 변연계(limbic system), 그 중 편도체(amygdala)를 거칩니다. 편도체는 여러 뉴런의 세포핵이 밀집되어 있는 부위로 다양한 신호의 입력과 출력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분노, 슬픔, 혐오, 공포 등을 관장합니다. 거기서 출력신호가 나가면 약 100분의 1초에서 10분의 1초만에 ‘몸에 이러 이러한 신호를 보냈다’ 또는 ‘몸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정보가 뇌로 피드백됩니다. 이를 ‘느낌’이라고 말하는데 신체적 변화를 감지하고 판정하는 뇌의 의식적인(conscious) 인식과정입니다. 대체로 두뇌피질(neocortex) 중 앞부분인 전두엽(frontal lobe)이 관장합니다. 그리고 전두엽은 방금 받은 정보를 뉴런 시냅스를 통해 편도체와 소통하면서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정보와 신체로 나간 정보 사이의 적절성을 평가합니다. 입력 분석과정에 오류가 있으면 끊고, 출력이 세면 줄여 조절합니다. 최종적으로 감정경험은 종류에 따라 두뇌 곳곳에 저장되며 다음에 있을 감정의 평가에 동원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은 부수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사실 감정은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장치입니다. 뇌를 ‘생각하는 기관’이기 이전에 ‘느끼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뇌졸중으로 전두엽 특정 부분이 손상된 사람은 잔잔한 미소, 시무룩한 표정 등 감정반응이 저절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기쁨이나 슬픔으로 인식하지는 못합니다. 기억력, 추리력 등 지능과는 별개로 마음이 텅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렇듯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매사 소소한 일, 어떤 선물을 고를까? 무슨 옷을 입을까? 등등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일에 가치나 경중을 따지지 못하기에 우선 순위를 결정 못하고, 목표도 설정하지 못합니다. 감정이 없으면 그야말로 방황하는 영혼입니다.
또 다른 예는 카프그라 망상(Capgras delusion)으로 알려진 정신질환입니다. 큰 교통사고로 두뇌피질 중 측두엽(temporal lobe)이 손상된 사람에서 가끔 나타납니다. 기억, 언어, 시각에는 별다른 문제 없지만, 가까운 사람 예를 들면, 어머니를 보고 ‘저 여자는 어머니 모습으로 위장한 가짜다’라고 하며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일에는 사려가 깊고 분별력이 있습니다. 다만 익숙한 것들, 자기 방이나 애완 동물 등도 부정합니다. 알고 보니 사고로 측두엽의 시각정보 처리센터와 편도체와의 연결이 끊어져 편도체에 새겨진 익숙한 것들에 대한 감정기억이 두뇌 시각피질에 맺혀진 영상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 영상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화로 어머니의 목소리들 들으면 사랑이 담긴 행복한 표정이 나타납니다. 청각정보 처리센터에는 감정기억이 정상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편도체에 새겨진 감정기억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서 볼 수 있습니다. 큰 사고에 연루되었던 감각 정보 즉, 사이렌 소리, 번쩍이는 불빛, 휘발유 냄새만 나도 마치 다시 그 사고를 당한 양 강한 스트레스반응이 나타납니다. 온몸이 긴장되고 땀이 나며 소화가 안됩니다. 신진대사는 마구 헛돕니다. 면역력, 생식력도 떨어집니다. 편도체의 감정유발 신호가 전두엽의 감정평가 신호를 완전히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에 감정의 옷이 입혀진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일상의 길잡이로서 목표지향적 행동을 하게 합니다. 생각을 생생하게 하게 하며, 관계없어 보이는 정보들을 연결시키는 창의성의 근본입니다. 개인 고유의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은 앞으로 있을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감정이 어떻게 새겨지느냐를 후각과 관련된 공포감을 대상으로 알아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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