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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습된 감정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4-12


선천적 감정은 진화의 결과물로서 대대손손 유전되지만 후천적으로 학습된 감정은 유전과는 관계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4년 에모리(Emory) 대학의 과학자 Dias와 Ressler는 수컷 생쥐의 총각 때 형성된 공포기억이 손자에게까지 전해진다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특정 냄새에 반응하는 아빠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게 되는 문화적 전달이 아니라 정자를 통한 생물학적 전달이라는 점에 있어서 유전학자, 신경생물학자, 심리학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논문입니다.

‘체리향à아픔’으로 훈련된 수컷 총각 생쥐는 체리향 냄새분자를 맡게 되면 몸을 움추리며 다가올 아픔에 긴장하는 듯한 행동을 보입니다. Dias와 Ressler는 학습 후 열흘 만에 체리향을 맡아본 적이 없는 암컷과 짝을 맺어 주고, 그 이후 태어난 새끼들이 체리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신기하게 자식들은 ‘체리향à아픔’ 학습을 받지 않았는데도 체리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소한 자극에 깜짝 놀라는 행동을 보입니다. 대조군 즉, 공포학습을 받지 않은 생쥐나 다른 냄새로 공포학습을 받은 생쥐의 자식에 비해 훨씬 그렇다는 것이죠. 이러한 아빠 생쥐의 감정 경험을 자식들이 답습하는 기작(mechanism)을 에모리 대학 과학자들이 알아냅니다.

감정이 어떻게 다음세대로 전달되나? 다음세대로 전달되는 것에는 분명 물리적인 실체가 있어야 합니다. 감정의 학습 및 기억의 물리적인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이 뇌의 신경망이라면 신경망 정보가 다음세대로 어떻게 전달되는 것인가? 막연합니다. 그렇지만 지난번 우리는 냄새물질에 대한 공포감이 학습되는 과정을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요약하면, 『특정 냄새물질의 정보는 특정 후각수용체를 발현하는 후각상피뉴런에서 후각망울에 있는 뉴런으로 시냅스를 통하여 전달된다. 그 냄새에 대한 정보는 불특정 다수의 측두엽 후각처리센터의 뉴런들에게 전달되며, 그 중 일부가 학습을 통해 편도체 뉴런으로의 연결이 강화되어 두려운 감정반응을 유발한다.』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냄새감각이 전해지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냄새수용체, 냄새신호전달 매개체, 후속 신경전달물질, 그들의 수용체 및 신호전달체계 구성 단백질, 전사인자 등등을 암호화하는 것들입니다. 선천적 감정에는 이러한 일련의 유전자들의 활성화 알고리즘이 짜여 있지만, 특정 냄새로 학습되는 감정의 경우에는 제일 첫 스텝인 후각세포의 냄새수용체 유전자 이외에는 어떤 알고리즘으로 구성될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Dias와 Ressler는 학습된 공포감정의 차세대 전달의 주역을 찾기 위해 체리향에 특이적인 수용체 유전자를 추적합니다. 체리향수용체 유전자에는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여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하는 부위, 프로모터(promoter)가 있습니다. 이 부위는 유전자 ON/OFF 스위치로의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가장 간단한 유기물질인 메틸기가 덕지덕지 많이 붙어 있으면 OFF 상태를, 적게 붙어 있으면 ON 상태를 유지합니다.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는 중장기 유전자 개폐조절의 일환입니다. 에모리 과학자들은 아빠 생쥐의 정자에 있는 체리향수용체 유전자 프로모터에 메틸화 정도가 줄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정자에 있는 유전자의 메틸화 정도 역시 줄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메틸화 정도가 낮아진 정자로 수정된 생쥐는 체리향수용체를 더 많이 발현할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식들이 체리향에 더 민감한 공포반응을 보인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놀라움 자체입니다. 첫째, 정자에 있는 유전자의 메틸화 정도를 떨어뜨리려면 콧속 천장에서 작용하던 체리향이 생쥐 고환에까지 흘러 들어가 가야 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둘째, 그 정자로 수정된 알이 발생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역경을 견디어 성체가 된 후에도 오롯이 그 낮은 메틸화상태를 특히, 후각상피뉴런에서 유지하여야 합니다. 셋째, 자식세대에서 체리향수용체의 증가가 왜 꼭 ‘체리향à두려움’으로 연결되느냐죠. 다른 감정 예를 들면, 행복감이나 공복감 같은 것과 연결되지 않고, 그것도 두 세대에 걸쳐서 자동으로 말입니다.

사실 연구자들도 그들의 결과에 스스로 놀라면서, 시험관 아기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자식이 아빠가 체리향에 겁먹는 행동을 보고 배우지는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바꾸어 양육하는 실험을 통하여 엄마 생쥐가 아빠 생쥐의 행동을 보고 아기를 키울 때 특별히 체리냄새에 주의하도록 교육을 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하였습니다. 하여간 Dias와 Ressler의 연구 결과는 냄새 공포학습은 아빠 정자에 있는 해당 냄새수용체 유전자 메틸화 정도를 낮추며, 그 변화된 양상이 고스란히 차세대로 전달됨을 부인할 수 없게 합니다. 이러한 환상적인 연구 결과를 보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TOO GOOD TO BE TRUE”

결국, 학습된 공포감의 유전은 한 개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DNA메틸화 흔적이 다음 세대로 넘어갔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를 후성유전(epigenetics)이라 하며, 다음 주에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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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G Dias and K J Ressler. Parental olfactory experience influences behavior and neural structure in subsequent generations. Nature Neuroscience 17, 89–96 (2014)

(추신) 심리학자들은 두려움(fear)과 염려(anxiety), 그리고 공포(phobia)를 구별합니다. 두려움은 실체적인 무엇을 직접 감각했을 때 생깁니다. 그렇지만 염려는 현재가 아닌 그리고 실체가 없는 어떤 막연한 것에 대해 생기는 두려운 감정이며, 공포는 직접적인 자극에 의해 형성되었을 수도 있지만 실체가 없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형성되는 병적인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 구별이 없이 사용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라고 써야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