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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0: 호모 이렉투스, 오래 달리기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3-04


1964년 하빌리스가 처음 발견된 이래 하빌리스 종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다수 발견되었고, 이들 중에는 한 종으로 같이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종은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로 독립합니다. 화석 증거는 200만년 전 전후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파란트로푸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이렉투스 등이 공존했음을 말해줍니다. 이렉투스는 하빌리스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유래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들이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을 거쳐 동남아 육지의 끝 인도네시아, 그리고 중국까지 진출한 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1년 흑해 동부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 조지아(Georgia)의 드마니시(Dmanisi)에서 두개골 5점과 다수의 뼈가 발굴되었고, 2013년 화석분석 연구결과가 사이언스에 발표되면서 고인류학계에 파장을 일으킵니다(1). 유골의 주인공들은 185만년 전의 이렉투스였고, 두개골 화석 5점 중 가장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두개골-5(Skull-5)의 뇌용량은 546 cc로 하빌리스보다도 작았고, 눈두덩과 입이 많이 튀어나와 마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팔다리 비율은 현대인과 비슷했습니다. 더욱, 두개골 5점은 비슷한 시기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만약 아프리카의 별개 지역에서 발견됐다면, 각각 다른 학명을 붙여줬을 정도였다고 한 화석분석 참가자가 토로합니다. 이내 관련 학자들은 이들의 차이는 사람이나 침팬지에서 보이는 개인차 정도라고 평가합니다. 사실 21세기 인간들을 비교해 보면 인종에 따라 키, 피부색, 얼굴 모양, 체형 등이 서로 상당히 다르지만 다 같은 종입니다.


드마니시 유골 분석결과는 이렉투스의 진화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우선 이렉투스가 하빌리스에서 유래했다는 통념을 깼으며,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여러 호모 종이 사실 이렉투스 한 종일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둘째, 이렉투스는 아프리카가 아닌 유라시아에서 기원했을 가능성도 있게 되었습니다. 호미닌은 생각보다 빠른 시기인 185만년 전 이전에 아프리카 탈출이 있었고 이들이 서아시아에서 이렉투스로 진화한 후에 일부는 아프리카로 돌아갔고, 다른 일부는 아시아로 동진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든 이렉투스는 부단히 움직였으며, 구세계 각 지역에 적응하여 10만년 전까지 존속합니다. 이렉투스는 인류 진화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호미닌입니다. 고인류학자들은 이들이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태의 다양성에 비추어 하나의 종으로 묶기가 곤란하다고 여겨 아시아 계통을 ‘좁은 의미’의 이렉투스(H. erectus sensu stricto)로 부르고, 아프리카 계통을 호모 에르가스터(Homo ergaster)로 독립시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계통 모두를 합친 ‘넓은 의미’의 이렉투스(H. erectus sensu lato)를 선호합니다.


이렉투스는 상하체 및 팔다리 비율이 현대인과 비슷했습니다. 키는 145 cm-185 cm, 몸무게는 40 kg-68 kg 범위로 지역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나며, 뇌용량은 600-800 cc 정도였고 후기 종은 사피엔스의 하한치인 1000-1200 cc에 달했습니다. 눈두덩뼈가 크게 불거져 나왔고 이마는 뒤로 쏠려있습니다. 입은 하빌리스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튀어나와 있으며, 이빨은 많이 작아져 있습니다. 1984년 케냐 투카나(Turkana) 호수 근처에서 발견된 160만년 전 소년의 전신 화석(투카나 소년)이 한참 현대화된 이렉투스(혹은 에르가스터)의 체형을 증거합니다. 이 유해는 지금까지 발견된 이렉투스 화석 중 가장 온존하게 보존된 상태였으며, 나이는 7-11살, 키는 160 cm 정도로 다 자라면 175 cm에서 185 cm에 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좁은 골반과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마른 체형의 유해입니다. 손과 발 부분은 유실되어 그 형태를 알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투카나 호수 해변에 찍힌 발자국으로부터 이렉투스는 잘 걷고 달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렉투스는 도구의 혁신도 이룹니다. 소위 손도끼로 알려진 아슐리안 도구(Acheulian tool)를 제작했는데, 양옆 앞뒤 거의 대칭을 이룬 물방울 다이아 모양으로, 정교한 손놀림과 심미적 감각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아슐리안 도구는 유럽, 동남아, 중국에서 이렉투스 유골과 함께 발견되며, 우리나라에서도 35만년 전의 아슐리안 손도끼가 경기북부 전곡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렉투스는 150만년 동안이나 그 도구를 즐겨 사용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개발하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이렉투스는 그 전의 호모 종에 비해 몸집이 커졌고, 더 똑똑해졌으며, 잘 걷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체형 하나만 보더라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걷기 시작한 후 300만년이 지나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호모 종으로 들어서면서 그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투카나 소년 화석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렉투스가 경험한 신체변화는 하빌리스가 경험한 변화와는 속도와 규모 면에서 한참 차이를 보입니다. 불과 30만년 사이에 팔, 다리, 어깨, 목, 허리 등 몸 전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변한 것이죠. 어찌 그렇게 빨리 변할 수 있었을까? 유타 대학의 데니스 브램블(Bramble) 박사와 하바드 대학의 다니엘 리버만(Liberman) 박사는 이렉투스가 오래 달렸기 때문에 빨리 변할 수 있었다는 ‘오래 달리기(endurance running)가설’을 발표합니다(2). 가설은 달리기를 걷기와 별개로 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일반적으로 달리기는 두발걷기가 선택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타났을 거라고 간주하는데 그렇지 않다. 달리기는 걷기와는 전혀 다른 신체적 또 생리적 적응을 요구한다. 어깨를 목에 붙이고 고개를 떨군 구부정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체형이 300만년이나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만 봐도 걷기는 신체변화를 크게 이끌지 못한다. 그리고 달리기의 가치는 주로 속도에 있다고 여기지만,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만이 오래 달리기가 가능한 동물로 장거리 경주에서는 말이나 개를 능가한다.』 사실 현대인은 달리기 대체 수단이 있기 때문에 오래 달리기에 대한 가치를 모릅니다. 하지만 브램블 박사와 리버만 박사는 활이나 창이 없이 손도끼 하나만 쓰던 이렉투스에게 오래 달리기는 먹거리 확보에 매우 중요했다고 보았습니다. 『오래 달리기가 자연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멀리 보이는 육식의 현장에 하이에나와 독수리 등의 경쟁자보다 일찍 도달하여 동물사체를 선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scavenging), 둘째 사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체형이 진화한 이후에는 사냥감을 지속적으로 추적하여 포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ersistent hunting). 오래 달리기는 먹이 획득에 직접적인 이득을 주었고, 그로 인한 고칼로리 영양원 공급은 신체발달과 두뇌발달을 견인했다. 이는 다시 추적사냥의 효율을 증가시켜 먹거리를 더 잘 확보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양성 되먹임 작용이 이렉투스를 빠르게 진화하게 했다.』


'오래 달리기’ 가설에 대한 증거는 있는가? 브램블 박사와 리버만 박사는 우리 몸 자체가 증거라고 말합니다. 『첫째, 사람만이 온몸에 수백만개의 땀샘을 가지고 있으며, 땀을 배출할 수 있기에 오래 달릴 수 있다. 심지어 두피에도 땀샘이 있어 뇌의 과열을 막는다. 이 땀샘은 걸을 때에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것으로 순전히 오래 달리기를 위한 것이다. 둘째, 목뒷덜미 근육 아래 감춰진 인대(nuchal ligament)도 달리기 적응의 산물이다. 이 인대는 머리를 척추와 연결시켜 달릴 때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고 흔들림도 잡아주는데 유용하지만 걸을 때는 딱히 필요없다. 뒷덜미인대는 오스트랄로피테구스에는 없다가 이렉투스에서 나타났다. 셋째, 종아리와 발에 있는 여러 힘줄과 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달릴 때 스프링으로 작용하지만 걸을 때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져도 걸을 수는 있다. 넷째, 엉덩이 근육이다(gluteus maximus, 대둔근). 말과 개는 허리를 펼 필요가 없으므로 대둔근이 거의 없고 대신에 허벅지 근육과 힘줄로 달린다. 인간만이 커다란 엉덩이를 가지고 있는데, 걷기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클 필요가 없다. 대둔근은 달릴 때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막고 발이 땅에 닿을 때 탄성을 주며 도약할 수 있게 한다. 동물의 꼬리와 같이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커다란 엉덩이이다. 다섯째, 사람의 어깨는 머리와 목에서 분리되어 있기에 어깨와 팔을 움직여져도 주변을 살피면서 오래 달리기를 할 수 있다. 우리와 다르게 유인원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깨가 목에 붙어있다.』 브램블 박사와 리버만 박사는 이외 20여개나 더 많은 사람 몸의 특징, 그 중에는 이렉투스나 하빌리스 화석에서 발견되는 특징도 분석하면서 그러한 것들이 오래 달리기를 위한 적응임을 주장합니다(3).

두발걷기를 시도한 이래 호미닌이 인간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도구제작은 먹거리의 다변화를 그리고 오래 달리기는 먹거리 획득의 수월성을 주었습니다. 먹는 문제 해결이 인간화의 중요한 부분이며, ‘걷는 자’보다는 ‘오래 달리는 자’가 인간화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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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vid Lordkipanidze et al. 2013. A Complete Skull from Dmanisi, Georgia, and the Evolutionary Biology of Early Homo. Science, vol. 342, no. 6156, pp. 326-331; doi: 10.1126/science.1238484

(2) Bramble, Dennis; Lieberman, Daniel (November 2004). "Endurance running and the evolution of Homo". Nature. 432: 345–52. doi:10.1038/nature03052. PMID 15549097

(3) http://discovermagazine.com/2006/may/tramps-like-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