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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1: 호모 사피엔스, 기원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3-09 


호모 이렉투스는 호미닌 중에서 가장 오래 존재했던 종입니다. 그들의 얼굴은 길고 이마는 뒤로 젖혀져 두개골 천장이 낮습니다. 큰 이빨에 입은 돌출되고 턱이 깎여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마가 튀어나오고 두개골 천장이 높습니다. 앞에서 봤을 때 이마가 넓으며 얼굴은 작아집니다. 이렉투스 두개골에 바가지 하나 덧쓴 모양입니다. 늘어난 부분은 신피질(neocortex)로 채워지며, 그 중 전두엽(frontal cortex)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눈썹부위와 입부위에 돌출이 없고, 대신 앞턱이 두드러지게 나옵니다. 한편, 네안데르탈의 두개골은 이렉투스 머리에 덧바가지를 뒤로 젖혀 쓴 모양으로 이마 돌출이 심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뒤로 밀린 형태입니다. 뇌용적은 사피엔스보다 약간 크며, 눈두덩뼈와 입은 사피엔스보다 나와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우리 직계 사피엔스를 ‘형태적 현대인(anatomically modern human, AMH)’이라고 합니다. 형태에 있어서 현대화를 하지 못하면 고대인(archaic human)입니다. 10만년 전의 사피엔스는 형태적 현대인이고, 4만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은 형태적 고대인입니다. 행동적인 면에서 즉, 언어, 음악 포함 창조적인 예술활동이 가능할 만큼의 현대화(behavioral modernity)는 나중에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AMH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 sapiens sapiens)라 하며 20만년 전 즈음 화석으로 나타나는 ‘초기’ 사피엔스에 비해 특별하게 취급합니다. 이 특별한 AMH가 환경의 담금질 즉, 극심한 건조기와 회복기를 여러 번 거치면서 향상된 인지능력과 생존기술을 습득합니다. 그리고 한 무리가 6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토착 이렉투스의 후예를 밀어내고 지구 전체를 접수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소위 단일 지역, 단일 종, ‘탈아프리카(out of africa) 가설’입니다. 현생 인류 ‘아프리카 기원설’이라고도 합니다. 한편 6만년 전보다 한참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호미닌이 각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토종 이렉투스와 섞여 사피엔스로 진화했다는 ‘다지역 기원설(multiregional origin)’이 있습니다. 이 가설은 1987년 모계로만 전달되는 마이토콘드리아 유전체의 기원을 추적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힘을 잃습니다. 소위 ‘마이토콘드리아 이브’로 알려진 20만년 전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거주했던 한 집단의 여자가 현존하는 인류 모두의 공통 어머니일 거라는 유전학적 증거가 제시된 것이죠. 이후 단일 인종 탈아프리카설이 지배가설로 되지만, 중동 지역에서 6만년 전보다 이전의 AMH 화석이 발견되면서 약간 수정됩니다. 『AMH는 12만년 전에 1차로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에 도착했고 더 이상의 확산은 없었다. 7.3만〜6만년 전 사이 보다 큰 규모의 제2차 아프리카 탈출이 있었고, 이들이 지구 곳곳에 퍼졌다(recent African origin of modern human, 최근의 아프리카 기원설).』


탈아프리카 가설은 영악한 사피엔스가 어리숙한 토착 이렉투스를 밀어냈다고 가정합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2014년 이 가설에 흠집을 내는 연구결과가 발표됩니다(1). 2013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스반테 파보(Paabo) 박사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 화석에 부서진 채로 있는 DNA를 조합해 전체 유전체 정보를 알아내는 위업을 달성합니다. 5만년 전에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을 디지털로 복원한 것이죠. 이 유전체 정보로 부터 우리 각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1〜4%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현존하는 인류 집단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40-50%가 남아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의 사촌인 데니소바인(Denisovan)의 유전적 기여 부분도 알아냅니다. 호주와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에게 그의 비율이 높았고, 특히 파파뉴기니아인들은 데니소바인 유전체를 6% 정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2018년에는 네안데르탈인 엄마와 데니소바인 아빠를 둔 딸아이의 유전체를 분석한 논문이 네이처에 발표됩니다. 같이 공존했던 호미닌들은 서로 접촉했습니다.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출신 AMH 순혈이 아니라 혼혈입니다.


2017년 6월 7일 네이처에 '단일 인종'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구심을 가지게 할만한 연구 결과가 또 발표됩니다(2). 1961년 북아프리카 모로코 제벨 이라우드(Jebel Irhoud)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4만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으로 간주되고 곧 잊혀 집니다. 이 유골터는 알제리 태생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허블린(Hublin) 박사에 의해 2004년 다시 파헤쳐집니다. 새로운 유골과 돌도구가 더 발견되었고, 유골의 정확한 연대를 측정한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사피엔스보다 10만년 이상이나 오래된 31만년 전의 초기 사피엔스임이 드러납니다. 놀라운 점은 얼굴은 AMH 자체로 현대화가 되어 있는데, 골상을 보면 앞부분 이마는 눌리면서 뒷부분은 길게 늘어진 네안데르탈인과 닮았습니다. AMH 얼굴과 고대인 두개골을 가진 묘한 조합입니다. 허블린 박사팀은 아프리카 동부나 남부가 아닌 북부에서 AMH로 진화해가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죠. 지금까지 아프리카 동부를 사피엔스의 에덴동산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 아프리카 전체가 에덴 동산인 셈입니다(허블린 박사의 표현입니다). AMH는 동부에서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토종 이렉투스가 중간 전이단계를 거치면서, 또 지역 간 섞이면서 서서히 진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AMH는 출발부터 혼혈이었으며, 그들이 시간차를 두고 여러번 아프리카를 벗어나 지구 곳곳의 토착 이렉투스와 피를 섞어 현재의 우리를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현생인류 다지역 기원설이 재등장합니다. 사실 다지역 기원설은 2백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이렉투스가 지구 곳곳에서 각자 진화해 사피엔스가 됐다는 데에서 출발했습니다. 중국의 화석학자들은 사피엔스와 닮은 이렉투스 유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상시성 달리(Dali)에서 발굴된 26만년 전의 화석은 이렉투스 특징과 사피엔스 특징을 고루 가지고 있는데, 그 유골의 주인공은 아프리카에서 AMH가 나타나기 이전에 중국에 살았던 초기 사피엔스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서구 화석학계에서는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달리인(Dali Man)은 철저히 비밀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여간 많은 중국학자들은 이렉투스 북경인(Peking Man)이 현존하는 아시아인의 조상이라고 여기며 다지역 기원설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2016년 중국 작가 제인 키우(Jane Qiu)는 현생 인류기원에 대한 중국 화석학계의 시각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3). 『200만 전 서아시아에서 나타난 이렉투스 일부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하이델베르겐시스(H. heidelbergensis)로 진화했고, 유럽으로 간 이렉투스는 네안데르탈인, 북 유라시아로 진출한 이렉투스는 데니소바인, 더 동방으로 향한 이렉투스는 중국에서 ‘여러 모습’으로 진화했다. 이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이렉투스는 AMH로 진화했고, 이들이 12만-8만년 전 사이에 1차 아프리카 탈출을 시도해 인도와 중국 포함 동아시아 지역의 토종 이렉투스와 혼혈을 이루었다. 그리고 6만년 전에 2차로 아프리카를 떠난 AMH는 중동을 거쳐 유라시아로 진출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접촉했고, 남쪽 루트를 따라간 AMH는 인도네시아를 거쳐 호주 등지로 퍼졌다.』


중국 남서 베트남 접경 운난성 ‘붉은사슴’ 굴에서 2012년 다수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유골의 주인공은 네안데르탈인과 형태적으로 비슷한데, 그 고대인이 1.1만년 전까지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근처 다른 동굴에서는 ‘붉은사슴인'과 AMH의 혼혈 두개골이 나왔고, 이들 역시 1만년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밝혀집니다. 운난성은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북쪽에 위치하면서 다양한 옛 모습을 가진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들 고대인은 아마도 데니소바인일 것으로 추정되며, 격리된 지역에서 인류가 농경시대로 들어갈 때까지 살고 있었습니다. 2003년 인도네시아 작은 플로레스(Flores) 섬에서도 신장이 1.1 m 정도인 호미닌이 발견됩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 floresiensis)’라는 학명이 붙은 이 난쟁이 종족(‘호빗’이라 부름)은 발견 당시 과학계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작은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플로레시엔시스는 90만년 전 이렉투스의 후예이고, 섬에 격리되어 살면서 작아졌고, 1.2만년 전까지 AMH와 공존하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2016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호빗은 1.2만년 전보다 일찍 5만년 전 즈음 AMH 혹은 데비소바인의 도착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물론 검증이 더 필요하고, 이들이 AMH와 접촉해 흔적을 남겼는지도 추후 밝혀야 할 부분입니다. 이렉투스의 후예 혹은 AMH와의 혼혈 종은 기존 생각보다 한참 동안 우리와 함께 지냈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는 중국인 유전체의 97.4%는 아프리카 AMH에서 온 것이고, 나머지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언뜻 이렉투스가 기여한 부분은 없어 보이지만, 그 97.4%에는 이렉투스 DNA가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이렉투스의 DNA를 누구도 추출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현재 우리 유전체에 얼마를 기여했는지 모를 뿐입니다.


유전학적 증거는 우리 인종마다 다른 기원을 가졌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유사합니다. 그렇다고 현존하는 비아프리카계 사람들이 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한 집단의 후손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집단을 이루어 부단히 움직였고, 서로 접촉하였고, 밀어내기 보다는 흡수하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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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 Prüfer; et.al. (2014). "The complete genome sequence of a Neanderthal from the Altai Mountains". Nature. 505 (7481): 43–49. Bibcode:2014Natur.505...43P. doi:10.1038/nature12886. PMC 4031459. PMID 24352235.

2. Jean-Jacques Hublin, et al. New fossils from Jebel Irhoud, Morocco and the pan-African origin of Homo sapiens. Nature 546: 289–292 (08 June 2017)

https://www.nature.com/news/how-china-is-rewriting-the-book-on-human-origins-1.2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