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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6: 네안데르탈의 흥망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4-08


지구 역사 마지막 빙하기는 12만년 전에 시작하여 1.2만년 전에 끝납니다. 혹독한 시절에는 얼음 두께가 3 km에 달하는 곳이 있었으며, 북유럽, 시베리아, 몽고, 캐나다 전역이 얼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툰드라 동토지역으로 수분이 얼음에 갇혀 있으니 추운데 건조하기까지 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은 40만년 전에 유럽에 자리 잡기 시작하여 한참 번성할 때 빙하기를 맞이했고, 그나마 잘 적응했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4만년 전 빙하전성기에 사라졌습니다. 사피엔스는 4.5만년 전 본격 유럽으로 들어가 서식지 다툼 끝에 네안데르탈을 궁지로 몰아 멸종에 이르게 했다고 한때 생각했습니다. 사피엔스는 그런 누명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닙니다. 네안데르탈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가?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후변화와 전염병 같은 외부요인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요인으로 사피엔스와 경쟁에서 질 수 밖에 없는 신체구조 혹은 적응능력 부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둘 다 작용했지만, 어느 것이 1차적인 요인인지 따지는 것이 과학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량은 사피엔스보다 20% 정도 컸으며, 두개골은 럭비공 모양으로 이마가 낮고 뒷통수가 깁니다. 남성의 키는 평균 165cm 정도에 몸무게는 80kg이나 나갔습니다. 팔다리는 사피엔스에 비해 짧았고 몸통이 두꺼운 근육형으로 다부진 체격을 가졌습니다. 넓은 가슴을 가져 폐활량이 한참 컸지만, 날숨에 담긴 수분은 굴곡진 비강과 높은 코를 통과하면서 걸러집니다. 네안데르탈은 춥고 건조한 환경에서 열과 수분손실을 최소화하는 신체구조를 가진 것이죠. 그들은 큰 뇌와 높은 밀도의 근육을 유지하려면 많이 먹어야 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의 생활터전은 숲이 많은 환경이었으며, 그에 적합한 근거리 ‘찌르기’용 창을 가지고 주로 대형동물을 사냥했습니다. 화석 증거는 그들의 오른쪽 팔뚝과 손아귀 힘은 무척 센 것으로 나타납니다. 네안데르탈은 날카롭고 묵직한 돌촉을 접착제와 끈으로 나무에 단단히 묶어서 창을 만들었는데, 근접사냥에 더 없이 좋았기에 25만년 동안 바꾸지 않았습니다. 네안데르탈의 언어는 사피엔스만큼 복잡하고 정교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두개골 구조 분석에 의하면, 사피엔스만큼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후두(larynx)가 목구멍 깊이 자리 잡지 않았고, 또 인두(pharynx)가 구강과 사각을 이루어 소리 공명이 좋지 않았습니다. 후두근육과 혀근육을 연결시키는, 발성에 중요한 말굽 모양의 뼈, 설골(hyoid bone)의 위치로 추측하건데, 네안데르탈은 사피엔스보다 고음으로 멀리 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미묘한 발성은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언어 능력 차이 때문에 네안데르탈은 15-30명 정도의 씨족단위로 지냈지만, 사피엔스는 50명 이상의 그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구성원 사이의 유대나 갈등조정에 필요한 의사소통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라시아에서 20만년 동안 잘 지내고 있던 네안데르탈에게 4.5만년 전부터 상황이 불리해집니다. 이미 한참 전에 그들과 피를 섞었던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날씨가 더 추워지기 시작합니다. 흑해 바닥이나 그린랜드에서 채취한 코아 샘플은 4.4만년 전 즈음 900년 간, 4.0만년 전 즈음 600년간 혹독한 추위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최근 루마니아 네안데르탈 거주 지역에 있는 석회암 동굴에서 채취한 종유석과 석순 샘플을 분석해보니, 두 번의 혹독한 빙하기 사이에는 30〜100년 간격의 기후 요동이 있었고, 그러한 환경에서 네안데르탈은 반복적인 인구 감소를 겪고 급기야 멸종에 이릅니다. 고고학적인 증거는 네안데르탈의 집단 크기는 작아졌고 또 격리되지만, 사피엔스는 그들의 빈자리를 채워 인구수를 늘려갔음을 보여줍니다(1). 네안데르탈에게 익숙한 숲이 초원으로 바뀌어, 그들이 즐겨 사냥하던 대형동물의 수는 줄고 날쌘 발굽동물이 많아집니다. 네안데르탈의 사냥방법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게 되는 반면, 먹거리 경쟁자인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와 중동 초원에서 쓰던 ‘던지기’용 창을 가지고 발굽동물을 많은 무리가 몰아가면서 사냥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신체구조는 오래 달리기에 유리했습니다. 네안데르탈도 사피엔스의 사냥도구를 모방하며 경쟁에 나섰지만, 이미 수적, 생리적,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멸합니다.


집단구성원 수가 줄어들면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여 집단은 취약해집니다. 4.9만년 전 스페인 네안데르탈 생활터전(El Sidron)에서 나온 뼈 1674점을 분석해보니, 17종류의 선천성 유전질환이 네안데르탈을 괴롭혔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근친교배의 결과입니다. 12만년 전 발칸반도(Vindija)에 살았던 네안데르탈 유전체와 5만년 전 시베리아(Altai)에 살았던 유전체를 비교해 보면, 7만년의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두 네안데르탈 간의 유전적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이들 사이의 유전적 이형성(heterozygocity)으로부터 인구수를 계산해보니, 3000명 정도로 너무 적게 나옵니다. 유전적 증거로는 그런 수치가 나오지만, 고고학적인 증거 즉, 네안데르탈이 남긴 유적지와 유물수로 추정하면 1〜2만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만여명의 인구라도 그들은 작은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또 집단 간 소통없이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더욱, 사피엔스가 가져온 결핵균, 성병 바이러스인 HSV-2, 위궤양균 H. pylori, 촌충 등에 네안데르탈 집단은 속수무책으로 당해 소멸하고 맙니다.


스텐포드 대학의 펠드만(Feldman) 박사는 환경압력 혹은 경쟁력 열세 둘 중 어느 것이 네안데르탈 소멸에 더 크게 작용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정량화한 여러 상황 변수를 가지고 모델링하여 분석해보니, 네안데르탈이 전염병이나 기후 같은 외적요인보다는 내적요인 즉, 문화적 역량이 더 중요한 변수였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2). 문화는 소통과 배움을 통한 생존기술의 전달로, 격리된 작은 집단은 기술을 배우고 전달할 때 실수율이 높아 중요한 기술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사피엔스는 문화적 유산을 유지하고 전달하는 충실도가 높았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펠드만 박사팀은 반복적으로 유입되는 집단은 그러한 문화적 역량 차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기존 집단을 밀어낼 수 있음을 모델링을 통하여 보여줍니다(3).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네안데르탈 소멸의 ‘널 모델(null model)’로서,*** 둘 사이 어떤 신체적, 생리적, 행동적, 문화적 차이를 상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피엔스는 반복적으로 네안데르탈 거주지를 침투했고 네안데르탈은 거주지를 고수하며 방어하는 조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1980년 초파리의 먹이 찾는 행동에 관련하여 방랑형(rover)과 안주형(sitter)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먹이가 풍부할 때에는 자리를 뜨지 않고 먹기에 열중하는 안주형이 득세를 하고, 먹이가 부족할 때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방랑형이 득세합니다(빈도 의존성 선택, frequency-dependent selection). 이후 먹이찾기 유전자 for (foraging gene)는 cGMP-의존성 단백질 인산화 효소로 밝혀졌고, 유전자 하나에서 수십 종류의 아형(subtype)이 만들어져 먹이찾기 행동뿐만이 아니라 먹이식별, 사냥 등 다양한 행동을 조절합니다. 개미와 벌은 물론 포유동물도 for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for 유전자는 PRKG1이라 명명합니다. 방랑형 for 대립인자를 가진 초파리는 모험적 행동을 보이며 안주형 초파리는 탐구적 행동을 보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목표 달성과 관련하여 행동(locomotion)형 숙고(assessment)형 둘로 나누고, 여러 관련 변수를 정량화하여 전자는 ‘그냥 해(just do it)’라는 자기조절 모드가 작동하고 후자는 ‘제대로 해(do the right thing)’라는 자기조절 모드가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람의 목표지향적인 행동이 초파리의 음식찾기 행동과 일맥상통하다는 연구결과가 바로 2019년 3월에 발표되었습니다(4). 초파리 for 유전자를 찾아낸 소콜로브스키(Sokolowski) 박사를 포함한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덴커르트(Danckert) 박사 연구팀은 학생을 대상으로 초파리의 음식찾기 행동을 모방한 가상 실험하였습니다. 결과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행동형이라고 평가한 사람들은 초파리의 방랑형 음식찾기 전략을 구사하고, 심사숙고형인 사람은 안주형 음식찾기 행동을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숙고형 사람은 초파리의 안주형 대립인자와 유사한 단일염기다형성(SNP)을 소유한 PRKG1 대립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은 사피엔스보다 추위에 잘 적응하는 신체와 생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급격한 기후 변동 조건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또 네안데르탈은 많이 먹어야 했기에 개체 수를 줄였고, 그럼으로써 유전적 병목 현상을 겪었습니다. 한때는 적응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부담이 되는 진화적 불일치(evolutionary mismatch) 때문입니다. 네안데르탈은 햇빛이 부족한 북반구 숲 환경에 적응하면서 심사숙고 정착형 뇌구조를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것 역시 방랑자적 행동형 뇌구조를 가진 사피엔스와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누가 네안데르탈을 덜 진화된 야수와 같은 야만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네안데르탈은 심사숙고하며 고민하는 두뇌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울증 관련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의 유산이라 하니 그럴 만 합니다. 우울증은 자신 안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좌고우면 분석하고 평가하는 성격의 소유자에서 나타납니다.


네안데르탈이 지적능력이나 환경적응력이 떨어져 멸종한 게 아니라 상황이 사피엔스에게 유리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네안데르탈이 멸종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입니다. 펠드만 박사의 ‘널 모델’은 어차피 네안데르탈은 사라질 운명이었음을 제시합니다. 종은 번성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진화의 본질입니다. 600만년의 인류 진화역사에서 나타난 30여 종 호미닌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약했거나 적응력이 없었던 게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피엔스 집단은 생물학적 진화에 관한 한 무적의 승자입니다. 70억이 넘는 구성원을 가지고 있기에 전멸의 염려는 결단코 없어 보입니다. 환경 재앙을 아무리 예측할 수 없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70억 인구를 흔적없이 지워버릴만큼 강력한 재앙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설사 인류 스스로 만든 재앙에 전멸의 위기를 맞이한다 하더라도 네안데르탈이 유전체를 우리 안에 남겨두었듯이 우리의 유전체를 어떤 복제기계에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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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ichael Staubwasser, et al. Impact of climate change on the transition of Neanderthals to modern humans in Europe. PNAS September 11, 2018 115 (37) 9116-9121; https://doi.org/10.1073/pnas.1808647115

2. William Gilpin, et al. An ecocultural model predicts Neanderthal extinction through competition with modern humans. PNAS published ahead of print February 1, 2016. https://doi.org/10.1073/pnas.1524861113

3. Kolodny O, Feldman MW. A parsimonious neutral model suggests Neanderthal replacement was determined by migration and random species drift. Nat Commun. 2017 Oct 31;8(1):1040. doi: 10.1038/s41467-017-01043-z.

4. Andriy A. Struk, et al. Self-regulation and the foraging gene (PRKG1) in humans. PNAS March 5, 2019 116 (10) 4434-4439; published ahead of print February 19, 2019 https://doi.org/10.1073/pnas.1809924116

***우리는 어떤 달라진 현상에 접하게 됐을 때, 그 변화의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때,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변화 요인도 작용하지 않는, 즉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가정합니다(null hypothesis). 이를 ‘널 모델(null model)’을 설정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널 모델’은 여러 요인들 사이의 관계성을 찾고 또 어느 요인이 1차적인 책임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진화에 있어서 ‘널 모델’은 DNA 복제실수에 의한 ‘중립변이’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자연선택이 작동했는가, 유전적 부동이 작동했는가, 유전적 유입이 있었는가, 혹은 급작스럽게 돌연변이가 들어왔는가 등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