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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8: 농경생활과 사피엔스의 진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4-26


지구역사의 마지막 빙하기는 12만년 전에 시작해 1.2만년 전에 끝났는데, 1.5만년 전에 2000년 동안의 따뜻한 시기가 반짝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사피엔스는 시베리아를 횡단해 북아메리카에 진출했고 1.35만년 전에는 남아메리카 남단까지 갔습니다. 식생이 풍부한 중동 레반트(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지역의 사피엔스는 정착생활을 시작합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에이난(Eynan)에서 발굴된 14500년 전의 정착촌 유적을 살펴보면 농사 흔적은 없지만 야생 곡물을 저장하는 장소가 있었고, 주변에는 사냥해서 잡아먹은 가젤뼈가 발견됩니다. 50여명이 무리지어 살았으며, 개와 함께 매장된 유골도 보입니다. 호시절도 잠시, 다시 지구는 12800년 전 1200년간의 짧은 빙하기에 들어갑니다. 이 시기를 영거 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라고 부릅니다.**


빙하기에 사피엔스는 영양결핍을 겪으면서 작은 그룹으로 흩어져 살아갔지만, 기후변화에 수동적으로 견디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물이 다소 풍부했던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주변에 정착하여 살면서 양질의 야생 곡물 씨앗을 선별해 초보수준의 농업을 했고, 다른 일부는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사피엔스가 비교적 온화한 지역인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즉,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터키 남동부, 이란 서부를 아우르는 지역에 하나의 문명권(나투피 문명, Natufian culture)을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1995년부터 발굴하기 시작하여 지금도 진행 중인 터키 남동부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 유적지는 나투피 문명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깊이 5m에 폭이 30m에 달하는 원형공간에 여우, 전갈, 뱀 등의 문양과 기호가 조각된 거석과 독특한 T자 형의 석주가 있습니다. 그 중 큰 것은 2m에 무게는 8톤이나 됩니다. 이러한 구조물은 현재 4곳이 발굴되어 있으며, 15개 구조물이 더 묻혀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수의 동물뼈들은 발견되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없습니다. 이 유적지는 아직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12000년 전 것으로, 주변 정착인들이 모여서 종교적인 의례를 치르는 신전으로 추정됩니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농경이 문명의 기원이었다는 종래 학설의 근본을 흔듭니다. 고고학자들은 본격적인 농업은 11600년 전 영거 드라이아스 빙하기가 끝난 이후로 보고 있지만, 놀라운 규모의 괴베클리 테페 신전을 건설하는 데에 동원된 인력 규모와 그들을 먹일 음식량을 고려하면 12000년 전에 농경이 궤도에 진입했어야 했다는 주장이 대두됩니다. 사실 고고학계에서는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농경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해 여러 가설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전통적인 가설은 기후변화가 씨족단위의 원시농업에서 재배농업으로 전환을 유도하여 식량생산의 증가를 가져오고, 결과로 인구증가와 함께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계급의 분화로 이어져 도시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이러한 견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농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전에 수렵채집인은 이미 큰 규모의 정착촌을 형성하였고, 정착촌 단위의 네트워크 체계가 있었기에 공공의 장소를 건설하여 종교적 의식을 치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농업이 먼저 실시되었고 그로 인해 높은 밀도의 집단 거주와 사회적 복잡성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높은 밀도의 사회적 문화적 공동체가 먼저 있었으며, 집단의식을 위해 농업이 실시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사회적 복잡성 때문에 사피엔스는 능동적으로 농업을 선택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수렵은 재미있는 놀이인 반면 농업은 고통스런 노동입니다. 씨족단위에서는 텃밭을 꾸미는 것과 같은 농업 행위는 있을 수 있지만, 복잡한 구성원을 가진 큰 집단에서는 노동에 대한 인센티브, 경작지 소유권, 잉여 농산물 처리 등과 관련된 사회적 계약이 뒷받침되어야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이가 가능합니다. 최근 연구는 농경인의 삶이 수렵채집인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농업이 사피엔스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규정합니다. 농업이 가져다주는 직접적인 이득과 잉여 농산물이 경쟁을 부추겼고, 전쟁에 이를 정도로 갈등이 심화됩니다.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계급이 등장하고 이들이 식량을 독점했기에, 농경인은 수렵채집인에 비해 영양실조로 고생했고 사망률도 높았습니다. 고대 농경인은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 때문에 영양 불균형을 겪었고 치아 감염이 심했습니다. 농경인들은 가축이 옮기는 병원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인구집중으로 인한 전염병 유행도 빈번했습니다. 현생 수렵채집 생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들은 다양한 먹거리로 균형식을 하기에 농경인보다 체격이 크고 건강합니다. 더 많은 놀이시간을 즐깁니다. 반면 농경인은 심한 노동으로 다리뼈는 가늘어졌고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합니다. 농경인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전 방위로 확산되었는데, 그 이유는 농업이 주는 결실에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진화적 용어로 사피엔스는 어떤 제약이 없이 자발적으로 농업에 적응했습니다.


많은 진화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농경 이후 사피엔스의 진화는 생물학적 자연선택보다는 문화적 선택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문화적 선택의 위력은 우리가 이룬 문명으로 실감합니다. 그러면 생물학적 자연선택의 영향은 어떠했을까요? 농경사회 진입 후 인간 유전체에서 양성 혹은 음성 선택된 유전자를 알아내면 자연선택의 힘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중립진화이론에 의하면 아무런 진화적 힘이 발휘되고 있지 않는 상태에서 기본적인 변이가 있으며(null model), 그 변이는 각 개인의 유전체에 무작위로 산재합니다. 이를 개인 고유의 단일염기 다형성(SNP)이라 합니다. 인간 유전체 빅데이터를 비교·분석해 보면(GWAS, genomewide association studies), SNP의 분포가 무작위적이지 않은 영역이 발견됩니다. 우선적으로 그 영역에는 유익한 유전자가 있어 양성선택된 영역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즉, 특정 유전자가 양성선택되면 그 유전자와 물리적으로 연결된 영역도 같이 선택됩니다. 이를 유전적 편승(genetic hitchhiking)이라 하며, 이 현상 때문에 양성선택된 유전자 포함 그 주변에는 단일염기 다형성이 줄어듭니다. 양성선택힘이 강하여 집단 모든 구성원이 그 유익한 유전자를 가지게 될 경우, 편승하는 영역도 함께 고정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유익한 유전자에 의한 선택몰이(selective sweep)라 합니다. 시카고 대학의 보이트(Voight)와 프리차드(Pritchard) 박사는 309명의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인의 유전체를 분석하여 양성선택된 자리 200여 곳을 알아냅니다. 그곳에는 피부색깔, 알콜분해, 염분조절과 고혈압에 관련된 유전자 등이 위치합니다. 메릴랜드 대학의 티쉬코프(Tischkoff) 박사팀 주도로 진행된 후속 연구는 가장 강력한 양성선택 신호를 보이는 자리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젖당을 소화시킬 수 있는 특정 락테이즈(lactase) 유전자가 있으며,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락테이즈 변이는 각각의 집단에 선택몰이로 고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1).


하버드 의대 레히(Reich) 박사 연구팀은 8500년 전에서 2300년 전 사이에 살았던 230명의 고대 유라시인의 유전체를 직접 현생 인류의 유전체와 비교하여 과연 어떤 유전자들이 양성선택되었는지를 알아냅니다. 지난 글에서 특정 피부색깔에 관련된 SLC45A2라는 특정 대립유전자 하나는 6000년전 농업이 유럽으로 전파되는 시기에 나타나 양성선택되어 현재 대부분의 유럽인 집단에 고정되었음을 소개했습니다. 레히 박사 연구팀은 락테이즈 대립유전자 역시 4500년 전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고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상당히 빠르게 집단에 고정된 셈입니다. 이외에도 혈액에 지질 및 지방산의 축적을 막는 유전자, 바이타민 D 생산에 관계하는 유전자, 결핵균 침입을 막는 톨-유사 수용체(Toll-like receptor) 유전자, 그리고 몇몇 자가면역질환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농경사회 진입 이후에 양성선택되었음을 보여줍니다(2).


불과 1만년 만에 이렇게 많은 유전자들이 양성선택되었다는 증거는 농경생활 이후 사피엔스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같은 사실은 2000년 이후 게놈시대에 들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간유전체 정보 분석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전까지 많은 과학자들은 인류의 진화는 멈추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유인 즉 농경사회에 진입한 이후 인구는 짧은 시간 안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특정 유용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가 아주 큰 집단에 속해 있으면, 그 개체를 따로 잘 관리한다 해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여전히 낮아 결국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07년 위스콘신 대학의 혹스(John Hawks) 박사팀에 의해 270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가 발표되면서 인류 진화가 멈추었다는 견해는 바뀌게 됩니다. 인간 유전체 7%에 해당하는 유전자 자리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그 진화속도는 40000년 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최근 5000년 동안은 100배나 빨라졌다고 주장합니다. 농경 이후 인구수 폭발은 돌연변이의 증가를 가져오고, 그 중 이로운 변이가 있고, 이들이 선택되는 과정에서 주변 유전자의 편승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었다고 해석합니다(3). 이 과정에서 인류는 하나의 멜팅팟에 섞여 진화한 것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 격리되어 따로따로 진화했습니다. 예로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말라리아 저항성 유전자가, 티베트, 에티오피아, 안데스 등의 고산지역에서는 혈액 내 용존산소 양을 증가시키는 유전자가, 알래스카 지방에서는 고지방 대사 유전자가 각기 양성선택되었습니다.


농경 이후 급격한 인구증가와 함께 나타난 해로운 변이는 어떠한 운명을 맞았는가? 물론 적합도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대립인자는 음성선택되어 집단에서 사라집니다. 이때 물리적으로 연결된 영역도 같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는 야생형 유전자 포함 그 주변 영역은 단일염기 다형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를 배경선택(background selection)이라 합니다. 그러나 적합도에 심한 영향을 주지 않는 약간 해로운 변이는 자연선택과정에서 쉽게 제거되지 않습니다. 특히 인구증가 속도가 빠를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2011년 워싱턴 대학 연구팀은 1000명 이상의 유전체를 비교하여 특정 질환에 취약한 대립인자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그 유전자 주변은 배경선택으로 단일염기 다형성이 줄어있는가를 조사합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해로운 유전자는 음성선택으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는데, 그 이유는 유익한 유전자가 양성선택되는 과정에서 해로운 유전자가 함께 편승했기 때문임을 알아냅니다(4). 젖당 저항성, 피부색깔 및 굵은 머리카락 등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양성선택되면서 자가면역질환, 대사성 질환, 암, 그리고 다양한 정신질환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편승해 우리의 유전체에 남아있는 것이죠. 유전적 편승은 제거되어야 할 해로운 유전자의 방어막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농경생활로 진입한 사피엔스는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현생 인류는 30만년 전에 나타났고, 29만년 동안 수렵채집인으로 지내다가 이제 불과 1만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생존에 직결된 식생활과 면역방어에 관련된 변이는 급하게 선택됐지만, 해로운 변이는 제거되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29만년 동안의 수렵생활에서 간직하고 있던 유전자 중에서 농경생활 조건에서 해를 주는 유전자 역시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제거되기에는 1만년의 세월은 턱없이 짧았고, 짧은 와중에 일부는 무임승차하여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농업을 능동적으로 선택한 사피엔스를 보면 가엾습니다. 5억년 전 동물은 정주형 방사대칭 구조에서 운동성 좌우대칭 구조로 바꾸어 쫓고 쫓기는 생활로 들어섭니다. 1억년 전 포유동물에 이르러 강력한 스테미너가 먹이 확보에 유리하기에 외온성 대사에서 내온성으로 대사로 에너지 획득 전략을 바꿉니다. 이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삶을 택한 것이죠. 1만년 전에 이르러 사피엔스는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를 위해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먹거리 생산에 직접 나섭니다. 동물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점점 피곤한 삶을 살게 되는데, 인간 이전의 동물은 그러한 삶에 던져진 것이지만, 사피엔스는 스스로 굴레를 만들어 피곤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인지혁명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지요. 진화압력에 놓인 당사자 개인은 피곤하지만 집단은 진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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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 Tishkoff, et al. Convergent adaptation of human lactase persistence in Africa and Europe. Nat Genet. 2007 Jan;39(1):31-40. Epub 2006 Dec 10.

2. I. Mathieson, et al. Genome-wide patterns of selection in 230 ancient Eurasians. Nature. 2015 Dec 24;528(7583):499-503. doi: 10.1038/nature16152. Epub 2015 Nov 23.

3. J. Hawks, et al. Recent acceleration of human adaptive evolution. PNAS December 26, 2007 104 (52) 20753-20758; https://doi.org/10.1073/pnas.0707650104

4. S. Chun and J.C. Fay. Evidence for Hitchhiking of Deleterious Mutations within the Human Genome. PLOS genetics. August 25. 2011 https://doi.org/10.1371/journal.pgen.1002240

**드라이아스는 고위도, 추운 고산 지역에 번성하는 담자리꽃으로, 온난화 시기에 고위도로 물러났던 담자리꽃이 날씨가 추워지면서 갑자기 다시 번성한 데서 붙인 이름입니다. 왜 지구는 이런 갑작스런 소빙하기를 맞이한 것일까? 지구 온난기에 빙하가 녹으면서 캐나다에 애거시(Agassiz) 거대호수가 만들어지고, 넘쳐나는 빙하 담수가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13000년 전의 일로서 찬 담수가 북대서양의 해수를 희석해 가볍게 만들면서 해수 흐름이 교란되었기 때문에 다시 빙하기로 들어서게 됐다고 추정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금 진행되는 지구 온난화가 빙하를 계속 녹여 담수를 바다에 쏟아 내면 혹시 영거 드라이아스와 같은 갑작스런 사건이 재현되지는 않을까 우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