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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호한 성, 그리고 성지향성의 진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9-03


유전적 오류을 가진 CAH ♀태아는 그가 만드는 과량의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남자두뇌로 분화되어 나중에 남자로의 성정체성(gender identity)을 주장한다고 지난번 이야기 하였습니다. 한편, 테스토스테론 수용체가 고장이 나서 생기는 완전형 안드로젠 불감증후군(complete androgen insensitive syndrome, CAIS)이 있습니다. 이 경우 ♂태아는 자신이 만드는 테스토스테론에 반응을 하지 않아 남자로의 발달이 진행되지 못합니다. 그 CAIS ♂아기는 고환이 안에 감추어진 상태로 여자의 외성기를 가지고 태어나며 또 여자아이로 키워집니다. 사춘기 들어서도 월경이 없음을 이상히 여겨 염색체 검사를 해보고 나서야 XY 성염색체를 가진 남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은 에스트로젠으로 변하여 여자로의 2차 성징을 나타나게 합니다. 당연히 여성 성정체성을 주장하고, 성지향성(sexual orientation)면에서도 곧여성(strait woman)입니다. 그야말로 XY 성염색체를 가진 여자입니다. 염색체로 남자 여자를 구별하는 것이 맞나요? 이 부분에 대해 2015년 2월 nature는 ‘천편일률적으로 성을 남자 여자 둘로 나누는 것은 현상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성은 스펙트럼이다’라는 과학계의 견해를 전하는 자유기고가 Ainsworth 씨의 글을 싣습니다(1).


배아의 성분화 과정에서 여자로의 발달이 디폴트 과정이며, ♂배아에서는 Y염색체에 있는 특별한 유전자 SLY가 활동을 개시하면서 남자로의 발달로 방향이 틀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WNT4 유전자의 복제수가 늘어나 있는 XY ♂배아는 다시 여자로의 발달 과정으로 돌아선다고 합니다. 반대로 여자로의 발달과정을 밟고 있는 XX ♀배아에서 RSPO1 유전자의 작동이 멈추면 난소이면서 고환이기도 한 애매모호한 생식기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성결정과 분화는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 또는 ♂으로의 성분화 유전자 활성화 네트워크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한 네트워크의 구성원 수나 활성에 있어서 변화가 있게 되면 두 가지의 성이 중첩되는 회색의 성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생식기 모양과 기능 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을 관장하는 두뇌발달과 구조 면에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과거 20여년간 성지향성 특히 동성애(homosexuality)의 생물학적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1993년부터 동성애 유전자가 X 염색체에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과 이어서 게이 동성애자의 뇌 특정 부분은 여자의 뇌 구조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게이유전자(gay gene)’의 실체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에서 하나가 게이일 때 다른 하나도 게이일 즉, 같은 성지향성을 보이는 일치율은 20-35% 정도입니다. 그 수치는 낮지만 유전적 관련성이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한참 높기에 유전적 소인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 집단 8% 정도는 동성애 취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수께끼는 ‘그 대립유전자가 어떻게 우리의 유전자 풀에서 사라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가?’입니다. 수수께끼를 풀어 내기 위한 가설들은 게이유전자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생존이나 생식에 유리한 측면을 제공할 것이라는 진화적 사고에 바탕을 둡니다. 첫째, 동성애 남자는 좋은 삼촌 역할을 하여 조카의 상대적 적합도를 증가시킨다. ‘집안 내 도우미(helper in the nest)’ 가설로 친족선택(kin selection) 이론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둘째, 게이유전자는 여자에게서는 출산력을 높이는 데에 기여한다는 가설입니다. 평형선택(balancing selection) 이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 동성애 남성의 엄마쪽 가계는 곧남성(strait man)의 엄마쪽 가계에 비해 더 많은 자식을 가진다는 최근 보고가 있습니다. 셋째, 게이유전자는 사회적 결속력(social bonding)을 증진시키는데 작동하여 우리 유전자 풀에서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유지된다는 가설입니다. 과학자들은 각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결과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떤 결과이든 해석에 있어서는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과학이죠.


최근 UCSB 진화유전학자 William Rice 박사는 게이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 특이적인 발달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에의 후성유전표지의 변화가 동성애 성취향을 결정한다는 새로운 가설을 발표합니다(2). 이는 유전자 보다는 환경 요인에 중점을 둔 것으로 (i) 태아는 자궁에서 그 양이 많건 적건 테스토스테론에 영향을 받고 있는데, (ii) ♀태아는 정상보다 많은 양의 테스토스테론에 대비하여 민감도를 낮추고, ♂태아는 정상보다 적은 양의 테스토스테론에 대비하여 민감도를 높인다. (iii) 이와 같은 ♀ 또는 ♂ 성별에 따른 민감도 조절은 태아의 생식기나 두뇌구조 발달에 있어서 정상치를 벗어나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한다. (iv) 테스토스테론 민감도는 그의 수용체 유전자를 비롯 많은 성결정 관련 유전자들의 메틸화로 조절할 수 있다. (v) 대부분의 후성유전표지는 유전체 재편성(genomic reprogramming) 과정에서 다음세대로 전달되기 전에 지워지는데, 일부 표지는 검열과정을 벗어나 전달될 수 있다(#6번글 『정자의 유전체에 새겨진 삶의 흔적』 참조). 결과로 (vi) 아빠의 테스토스테론 과민성에 관련된 표지가 딸에게로, 엄마의 둔감성 표지가 아들에게로 전달되면서 레즈비언 또는 게이로 될 수 있다. 부모의 유전체에 새겨진 흔적이 자식에게도 넘어가는 것은 어느 정도로 있는 자연현상으로 여겨집니다. 성결정 과정에 관련된 유전자 중에서 얼마나 많은 유전자에 표지가 새겨지며, 또 그 표지가 얼마만큼이나 지워지지 않고 다음세대로 전달되느냐가 우리 집단에서 나타나는 동성애자 비율을 결정할 것이라고 봅니다. 엄마의 후성유전표지가 아들에게로 가면 게이로, 아빠의 표지가 딸에게로 가면 레즈비언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나타날 것이라는 새로운 성지향성의 진화 가설은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15년 10월 UCLA의 Eric Vilain 박사 연구팀은 미국인간유전학회(ASHG; 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에서 동성애에 관련된 후성유전표지를 가진 유전자를 알아냈다고 발표합니다. 곧바로 nature에서, 그리고 그 nature 기사의 권위를 믿고 여러 대중매체가 이 사실을 뉴스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샘플 수와 통계처리 및 해석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으며, 아직 정식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성지향성과 관련된 연구결과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 개인의 성지향성은 선택의 결과인가?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에 대한 과학계의 판단이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간성(intersex)을 가진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인권 신장에, 그리고 그들을 향한 편견과 사회적 갈등 해소에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의 성지향성은 일정 부분은 출생시기 전후의 생물학적 영향이 환경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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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 Ainsworth. Sex redefined. (2015) Nature 518:288-291.

(2) WR. Rice, et al., Homosexuality as a Consequence of Epigenetically Canalized Sexual Development. (2012) The Quarterly Review of Biology 87:343-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