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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33: 포유류 시대(3)-태반의 진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8-09


포유류의 배아발달 과정에서 난자에 저장된 난황은 배아가 엄마 자궁에 자리잡기 전까지만 쓰입니다. 이후 배아는 엄마가 수시로 만들어내는 양분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런데 엄마 자신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태아의 요구를 다 들어 줄 수 없습니다. 태아는 자신의 반을 구성하는 아빠유전자의 이기적인 기대를 충실히 반영하며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추구합니다. 엄마 역시 태아를 향한 자신의 유전적 투자의 성공을 추구하지만, 당장의 물질적 투자에 갈등합니다(카페 글 17 참조, 성인병의 태아유래 가설: 유전체각인). 사실 엄마는 자신만을 고려한다면 면역시스템을 동원하여 갈등의 싹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배아 발달 초기에 유효했지만 엄마는 자제했고, 배아도 엄마의 면역계에 노출되지 않게끔 조심합니다. 이후 배아가 성공적으로 엄마의 자궁에 자리잡아 임신이 시작되면, 양분 배분의 주도권이 조금씩 태아로 넘어갑니다. 엄마는 다방면으로 절충을 시도하지만 도리 없이 태아의 요구에 응합니다. 태아가 태반이라는 훌륭한 장기를 만들어 놨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태생 포유류가 태반을 구축하는 특별한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배아발달 초기 포배기(blastula stage)에는 수정란에서 분열한 바깥 영양막세포(trophoblasts)들이 보자기를 만들어 장차 배아(embryo)로 발달할 안쪽 세포집단(inner cell mass)을 감쌉니다. 곧이어 영양막세포는 자궁내막의 상피세포층을 헤집고 들어갑니다. 이러한 침투과정에서 배아를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자궁 안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영양막세포들이 서로 융합하여 다핵 거대세포(syncytiotrophoblast)를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세포들 사이의 틈이 없어져 엄마의 면역세포가 비집고 들어갈 수 없게 되지요. 거대 융합체 전방 부위는 내부로부터 신규 세포의 융합이 계속 일어나 확장되면서 태반으로 분화합니다. 따라서 융합체 형성은 안정적인 배아착상과 태반형성에 필수적인 첫 번째 과정입니다. 몇몇 바이러스학자들은 이러한 세포융합이 외피막(envelop)을 가진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가 숙주세포를 감염할 때와 비슷한 메커니즘임을 알아내고, 레트로바이러스가 태반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 근거로, 『(i) 레트로바이러스는 태반에서 자주 발견되며, 바이러스 흔적이 몇몇 태반-특이 유전자에 나타난다. (ii) 감염은 바이러스 외피막과 숙주 세포막 사이의 융합으로 시작되는데, 융합은 바이러스가 보유한 엔브(env) 유전자의 지시로 이루어진다. (iii) 엔브 단백질은 세포막의 융합 이외에 숙주 면역세포의 활성을 억제한다.』 2000년들어 영양막세포 융합을 매개하는 신시틴(syncytin) 유전자가 발견되며, 그 유전자가 바로 내재화된 레트로바이러스(ERV, endogenous retrovirus)의 엔브 유전자임이 밝혀집니다(1). 이후, 레트로바이러스 감염이 태반 진화를 촉진하였고 더 나아가 포유동물이 태생으로 전환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가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집니다. 『포유류가 태생으로 전환하는 어느 시점에서 배아는 자궁을 감염시킨 바이러스에서 엔브 유전자를 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기화된 신시틴 유전자는 배아 보호막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 방법을 터득한 포유류는 모체의 면역공격으로부터 배아를 확실히 보호하고, 태반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어 모체의 양분을 보다 효율적으로 얻어낸다.


이러한 태반진화 시나리오는 바이러스의 감염을 필수적인 전제로 시작합니다. 과연 필수적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태반류 모두(사람 포함 영장류, 생쥐 등 설치류, 여러 되새김 동물들, 여러 육식동물들, 토끼, 돼지, 양 등등) 엔브-유래 신시틴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신시틴 유전자는 모두 다른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엔브 유전자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만 태반이 필요한 유대류도 엔브 유전자를 수입해 썼습니다. 최근 난생 도마뱀이 태생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레트로바이러스 엔브 유전자를 가져다 썼음이 알려집니다(2). 도마뱀의 경우, 엔브 유전자는 배아의 영양막세포의 융합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자궁 상피세포의 융합을 매개하여 배아를 자신의 면역계로부터 격리시킨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태생 도마뱀은 배아-유래 태반이 아니라 모체-유래 태반을 가지는 것이죠. 하여간 태반의 진화에 바이러스 엔브 유전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가 태반의 진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진화에서 인과관계를 알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주제는 없습니다.


화석과 유전체 계통분석에 의하면 태반류는 1.6억년전 단일 조상에서 유래했습니다(단일 계보, monophyletic). 그 공동조상은 당시의 원시 레트로바이러스로부터 엔브 유전자를 가져다 쓰면서 안정적인 태반을 만들었다고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 방산된 태반류는 같은 엔브-유래 신시틴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태반동물류 각각 다른 엔브-유래 신시틴을 가지고 있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다. 태반은 동물마다 크기, 모양, 세포 구성 등이 제 각각입니다. 공동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동물종마다 독특한 태반을 독립적으로 만들어낸 수렴진화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동물의 번식 전략은 종에 따라 다 다릅니다. 어떤 동물은 새끼 한 마리를 낳아 잘 보살피지만, 어떤 동물은 열 마리 이상을 낳아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 둡니다. 임신기간이 다르며, 엄마와 태아 사이의 양분 배분전략이 다릅니다. 그러니 태반 형태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조상 태반동물은 태반 변이에 따른 생활사 전략(life history strategies) 변화로 다른 종으로 적응 방산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신시틴 유전자 변이의 부동이나 적응적 선택을 기다리기 보다는 주변에 흔히 있었던 바이러스 엔브 유전자를 가져다 썼습니다. 일반적으로 적응진화는 기존 제품을 돌연변이를 통하여 개량하는데, 태반의 경우 수입품으로 대치했다는 것이죠. 수입품이 더 적합하면 양성선택되어 기존 제품을 밀어냅니다.


그러면 수입품을 써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바이러스가 태반에 흔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들은 주로 다른 개체를 감염시킴으로써 그들의 존재 이유인 광범위 유전자 전파를 실현합니다(유전자 수평전달). 어떤 바이러스는 숙주의 생식세포로 들어가 다음 세대로 자신의 유전체를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합니다(유전자 수직전달). 수직전달은 바이러스의 존재가치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실현하는 기회로 바이러스가 양보다는 질을 선택한 셈입니다. 레트로바이러스를 포함 많은 바이러스는 유전체 수직전달 창구로 태반을 이용합니다. 모체를 감염한 바이러스 혹은 그들의 유전체는 태반을 통해 태아로 들어갑니다. 역으로 태아의 것이 모체로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태반은 외래 유전체 수출입이 빈번히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또한 수입품 사용이 편했고, 상황도 그랬습니다. 태반은 임신에 따라 자동적으로 또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기관입니다. 이때 태반을 만들기 위한 유전자들이 차출됩니다. 그 유전자 세트는 동물 별로 진화적으로 고정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보통의 집 지키기 유전자, 신호전달 유전자가 있으며, 신시틴 포함 다수의 태반-특이 유전자도 있습니다. 동물이 분화함에 따라 태반 확장이 필요하면, 신시틴 활성이 더 요구됩니다. 이때, 유전체 중복을 기다리기 보다는 주변 다른 바이러스의 엔브 유전자를 취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사실 사람이나 쥐는 두 개의 신시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개 모두 다른 바이러스 엔브에 기원을 둔 것입니다. 혹 변이가 생겨 배아착상이나 태반형성에 약간의 손상이 있게 되면 그 개체가 자연도태되기 전에 주변에 있는 다른 엔브 유전자를 쓰면서 도태를 모면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든 신규 엔브 차출이 성공적이면 양성선택되고, 이를 통해 태반의 구성이나 형태의 변화까지도 가져온다면 다른 생활사 전략을 가진 다른 종으로 분화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 엔브 단백질이 막융합과 면역억제라는 두 독립된 활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추론에 더욱 힘이 실립니다. 즉, 신시틴에 변이가 생겨 막융합 혹은 면역억제 활성 둘 중 하나를 잃게 되면, 다른 엔브를 채택하여 결손을 보충하려는 힘이 자연도태보다 강할 것입니다. 이는 사람과 쥐가 가지고 있는 두 개 신시틴 중 하나는 면역억제 활성을 잃은 것이라는 사실이 증거합니다. 하나 더 언급하면, 엔브는 숙주세포막에 있는 고유의 리간드와 결합합니다. 이러한 엔브-리간드 결합 쌍에서, 엔브에 변이가 생기면 리간드는 쓸모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리간드가 엔브 변이에 따라 변할 수 있느냐? 목표를 가진 표적 적응진화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다른 감염으로 리간드가 확인된 다른 엔브 수용체를 채택해 새로운 시작을 도모해야 합니다.


태아는 엄마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양질의 양분을 충분히 얻어내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태반동물은 자신에게 맞는 보다 효율적인 태반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유전적 마모로 손상되는 부품을 수선하고 개량하는 대신 즉시 즉시 수입품으로 교체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태반동물이 신생대 곳곳에 방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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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 Mi, et al. Syncytin is a captive retroviral envelope protein involved in human placental morphogenesis. Nature. 403:785-789. 2000

(2) G. Cornelis, et al. An endogenous retroviral envelope syncytin and its cognate receptor identified in the viviparous placental Mabuya lizard. Proc Natl Acad Sci U S A. 114:E10991-E11000.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