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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르몬 먼저, 수용체 먼저?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1-29


호르몬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진화했을까? 호르몬은 다세포 복잡생명의 번식과 생존의 화학반응을 조율하는, 좀더 좁히면, (i) 뇌의 조종을 받아 (ii) 내분비샘에서 분비되어 (iii) 혈액을 타고 멀리 있는 표적세포에 작용하는 생리활성 물질입니다. 크게 단백질 계열, 아민 계열, 스테로이드 계열 셋이 있습니다. 아민이나 단백질 성장인자들은 단세포 수준에서 작동했던 물질이며, 뇌를 가진 운동성 복잡생명으로 진화할 때 비로소 호르몬으로서 기능성(functionality)을 가지게 됩니다. 이들과는 다르게 스테로이드는 다세포 연합생명에서 운동성 생명으로 진화할 때 나타난 생리활성 물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중 어느 스테로이드가 본격 호르몬 기능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호르몬의 기능성’이라 함은 표적세포에 있는 수용체와 짝을 이루어 생존 혹은 번식과 관련된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해보렵니다. 최초의 (스테로이드)호르몬은? 그의 수용체는? 그리고 호르몬이 먼저일까 아니면 수용체가 먼저일까?


스테로이드 호르몬에는 생식선(gonads)에서 만들어지는 성스테로이드(sex steroids)와 부신피질(adrenal cortex)에서 만들어지는 코티코스테로이드(corticosteroids, 짧게 코티코이드)가 있습니다. 전자에는 안드로젠(androgens), 에스트로젠(estrogens), 프로제스토젠(progestogens)이 있고; 후자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당질코티코이드(glucocorticoids)와 체내 이온균형과 수액을 조절하는 무기질코티코이드(mineralococorticoids)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콜레스테롤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서 합성되기도 하고 음식물로도 공급됩니다. 적정선에서 콜레스테롤의 양을 유지하는 것은 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매우 중요합니다. 스테롤(sterol) 계열 화합물 중 콜레스테롤은 동물에서만 만들어지며, 식물과 곰팡이는 다른 종류의 스테롤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핵세포도 스테롤을 합성하지만, 다세포 진핵생명으로 진화한 이후에 스테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져 세포막 주요성분으로 등장하였고 이어 다양한 기능을 하게 됩니다. 화석화된 스테롤 흔적은 다세포 복잡생명 진화의 증거입니다.


콜레스테롤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임신 호르몬으로 알려진 프로제스테론(progesterone)이 제일 먼저 나타나고, 이후 한 갈래는 안드로젠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경유하여 에스트로젠을 만듭니다. 또 다른 갈래는 프로제스테론 유도체 중간물질로부터 당질코티코이드와 무기질코티코이드를 만듭니다. 정소는 테스토스테론까지만 만들고, 난소는 연장하여 에스트라디올(estradiol)까지 만듭니다. 성스테로이드는 생식선 이외의 장소에서도 만들어지며, 합성 중간산물이 어떤 수용체에 결합하느냐에 따라 에스트로젠 혹은 안드로젠으로 쓰입니다. 부신피질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은 소량으로 만들어지며, 거기에 종양이 있게 되면 여성이라도 남성 버금가게 테스토스테론을 만듭니다. 부신피질은 주로 당질 및 무기질 코티코이드를 만드는 장소입니다. 안드로젠, 에스트로젠, 프로제스토젠은 집합명사이고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라디올, 프로제스테론은 고유명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코티코이드는 집합명사이고 당질코티코이드인 코티솔(cortisol)과 무기질코티코이드인 알도스테론(aldosterone)은 고유명사입니다.


상기한 5종류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각기 세포내 혹은 핵내 수용체를 가집니다. 에스트로젠은 2개의 수용체를 가지기에, 척추동물에는 모두 6개의 수용체가 있습니다. 호르몬이 수용체와 만나면 그 복합체는 특정 유전자를 찾아가 결합하여 mRNA를 만들어냅니다. 수용체가 바로 전사조절인자가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mRNA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이 호르몬의 효과를 중개합니다. 따라서, 수용체는 구조적으로 또 기능적으로 독립된 두 영역, 하나는 호르몬과 결합하는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에 결합하는 영역을 가집니다. 이러한 수용체의 모듈화는 유전자 조작으로 수용체의 성질을 쉽게 바꿀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면, 에스트로젠 수용체의 호르몬 결합영역에 코티솔 수용체의 DNA 결합영역을 떼어내 붙인 하이브리드 수용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수용체는 세포수준에서 에스트라디올 처리시 여성성에 관련된 유전자 대신에 스트레스 반응을 매개하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킵니다.


2001년 조 쏘온톤(Joe Thornton) 박사는 무악(턱이 없는) 척추동물인 칠성장어(lamprey)에는 프로제스테론 수용체, 코티코이드 수용체, 에스트로겐 수용체 셋만 있음을 알아냅니다. 분자계통분석을 통하여 생명 진화역사에서 무악 척추동물 이전에 있었던 척삭동물(chordates)은 원시형 에스트로젠 수용체만 가지고 있다가, 진화 어느 시점에서 유전체 중복이 있었고, 그 중복변이로 생긴 여분의 에스트로젠 수용체가 변하여 프로제스테론과 코티코이드 수용체로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유악 척추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의 유전체 중복을 경험하면서 현존하는 척추동물은 모두 6개의 스테로이드 수용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가설을 내놓습니다(1). 척추동물의 진화역사에서 2번에 걸친 전체 유전체 중복이 있었음을 이미 소개한 바 있습니다(생명의 역사 14).


스테로이드 호르몬 합성경로를 보면 에스트로젠이 종착점인데, 에스트론젠이 제일 먼저 수용체를 가지게 된 최초 호르몬입니다. 이전에는 스테로이드 화합물은 세포막 구성 성분으로 쓰였거나 여러 항산화 반응을 매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트로젠이 신호전달 수용체를 어떻게 가질 수 있었는가? 사실 세포 내에는 콜레스테롤 및 그의 대사산물에 결합하는 단백질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통틀어 핵수용체(nuclear receptor)라고 부릅니다. 이들 핵수용체 중 하나가 그리 높지 않은 특이성으로 에스트로젠에 결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minimal specificity). 실제로 쏘온톤 박사팀은 다양한 분자계통학과 구조생화학 정보로 부터 조상 스테로이드 수용체를 도출하였고, 여러 분자세포생물학 실험을 통하여 그 조상 수용체는 전체적으로 현재의 에스트로젠 수용체와 비슷하며 DNA 결합영역도 에스트로젠에 의해 활성화되는 유전자에 높은 친화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호르몬 결합영역은 에스트로젠에 대한 특이성이 그리 높지 않고, 다른 호르몬과 결합할 수 있는 무차별적 난잡성(promiscuity)이 있음도 아울러 보여줍니다. 즉, 스테로이드 합성과정에서 나타나는 중간물질도 조상 에스트로젠 수용체에 결합할 수 있었습니다. 쏘온톤 박사는 과감하게 그 조상 수용체가 변하여 포로제스테론, 안드로젠 및 코티코이드 수용체로 진화했다는 가설을 내놓습니다. 흔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같이 호르몬-수용체 쌍의 진화에서, ‘호르몬이 먼저냐 수용체가 먼저냐?’를 질문합니다. 제일 먼저 수용체를 가진 스테로이드가 에스트로젠이었고, 이미 있었던 에스트로젠이 수용체를 결정했기 때문에 호르몬이 먼저라고 답하는 것이 맞습니다.


현재의 에스트로젠 수용체에는 진화의 옛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좀 덜 해졌지만 여전히 난잡성을 보입니다. 에스트로젠의 화학 구조를 보면 방향족 육각형 고리와 그의 3번 탄소의 수산화기(C-OH)가 수용체 결합에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호르몬은 3번 탄소가 케톤(C=O)이여서 방향족이 아닙니다.) 환경호르몬으로 악명 높은 비스페놀-A (bisphenol-A, BPA)와 콩의 구성성분인 제니스타인(genistein)은 방향족 3번 탄소 수산화기를 가지고 있기에 에스트로젠 수용체에 느슨하게 결합하여 내분비 기능에 혼란을 줍니다. 여러 농약 성분 등 다양한 내분비 장애물질(endocrine disrupter)은 대체로 에스트로젠 수용체를 건드립니다.


최초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동물의 번식에 관여하는 에스트로젠이었습니다. 포유동물에 와서는 에스트로젠은 암컷의 2차성징과 여러 모성행동을 조율하지만, 유악 척추동물 이전의 척삭동물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없이 에스트로젠 하나로 암수의 발달과 번식을 관리했습니다. 실제로 현존하는 칠성장어의 번식 역시 에스트로젠 하나로 관리됩니다. 그러면 생존에 지극히 중요한 당질코티코이드인 스트레스 호르몬과 그의 수용체 쌍은 어떠한 진화과정을 밟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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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W. Thornton. Evolution of vertebrate steroid receptors from an ancestral estrogen receptor by ligand exploitation and serial genome expansions. PNAS May 8, 2001 98 (10) 5671-5676; https://doi.org/10.1073/pnas.091553298